시 비
 
 [2005-08-19]

시  비

 

▲ 하길남 시인
시비란 말할 것도 없이 잘 잘못을 가리는 일이다. 그러나 그 옳고 그르다는 것이 사람에 따라 다르고, 집단에 따라, 혹은 계층 간에, 종족에 따라 국가에 따라 다르니 늘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필자가 사정이 있어 차를 두고 창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더니, 할머니 세 분이 버스기사에게 언성을 높여 항의를 하고 있었다.


버스 노선을 종전대로 두지 않고 왜 바꾸었느냐는 것이다. 지금은 버스 번호가 세 자리가 되어 두 자리일 때보다 상대적으로 글씨가 작아졌으니, 늙은이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종전과 달리 푸른 바탕에 흰 글씨로 써놓았으니, 선명하지 못하고 희미하여 도무지 요량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자주 타는 버스를 잘 알고 있는데, 다시 바꾸어서 혼란스럽게 할 일이 뭐며, 돈들 안 들었나는 것이다.


그러나 버스기사는 아무 말도 없이 묵묵부답이다. 그러니 할머니들이 더 다그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지 크게 잘못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한 마디씩 거든다. 승객들은 모두 한 마디씩 참견을 한다. 글자 수가 적으면 글자가 크게 되고, 바탕과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배색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필자는 버스 안이 너무 소란스러워 ‘이제 알았으니 그만합시다. 그들도 일부러 시민이 불평하라고 그렇게 했겠소,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차차 시민들의 여론도 듣고 해서 고쳐나갈 것이 아니겠소, 미안합니다.’ 하고 한 마디 거들고 말았다. 필자도 결국 시비에 말려들고 말았으니 시비는 또 시비를 낳는지라, 그래서 시시비비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