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열정’에 언론 열 받다
 
 [2005-05-25]

최근 삼성의 이건희 회장에 대한 명예박사학위 수여와 관련하여 대학생들이 시위를 일으킨 것을 두고 온통 언론이 시끄러웠다. 언론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철부지 없는 막된 행동’이라고 시위 대학생들을 질타하는 듯한 여론 분위기다.

 

삼성에 대한 평가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고 본다. 세계적 기업의 위상 그리고 위선적 기업의 허상이 바로 그것이다. 최첨단 기술로 세계 최고의 전자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 임직원들에게 아주 만족할만한 보수를 제공하는 기업,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상과 브랜드를 한 층 높여주는 기업 등 세계적 기업으로서의 삼성은 다양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와 같은 높은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삼성은 아주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한다. 황제식 경영은 그렇다 치자.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이 편불법적으로 엄청난 액수(그 금액은 적어도 이 사회에서 그리 적지 않은 수입을 거둔다고 생각하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도 여지없이 천문학적 수치이다)의 주식을 아들 이재용에게 상속시킨 졸렬한 모습, 금권을 앞세워 온갖 압력으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초일류 세계적 기업이 그것들이다.

 

참고로 노동자들에게 급여를 많이 준다는 이유로 조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역으로 가정해서 만일 삼성이 사세가 기울어 직원,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급여를 갈수록 적게 줄 수  밖에 없을 경우, 그 때는 삼성이 노동조합의 설립을 허락해줄 것인가?

 

이 두 가지 상반된 사회적 평가 가운데 서서 자유. 정의. 진리를 교훈으로 하는 고려대 학생들이 고민하고 문제를 제기한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본다. 문제가 됐다면 다만 그 방법에 있어서 적절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시위 학생들 스스로도 반성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언론의 태도다. 하늘과도 같은 광고주 삼성, 천문학적 숫자의 금액을 신문방송에 제공하는 초대형 기업 삼성에 맞서 과연 언론들이 앞에서 언급한 문제점들에 대해 사회정의 구현차원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는지 자못 궁금하다.

 

삼성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이른바 주류언론들은 각성해야한다. 비록 아직 사회적으로 성숙하지는 못했지만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과 열정만은 순수한 그 시위 대학생들에게 함부로 돌맹이 던지지 마라! 그동안 삼성과 ‘유연한 물적관계’를 이루었던 주류언론들이 삼성의 사회적 병폐에 대하여 얼마나 진지하게 문제제기를 했는지 그들 스스로 두 눈을 감고 가슴에 손 올리고 생각해볼 일이다.

 

다시 한 번 물어보자. 그 시위 학생들에게 비난의 불화살을 쏟아 부을 만큼 그들이 그렇게 죽을 죄를 지었는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추가하고자 한다. 국가 사회적으로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명예로운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것,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이건희 회장에게도 그러한 명예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일정부분 공헌은 있다고 본다. 정작 문제는, “젊은 사람들의 열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삼성의 발표를 주류언론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채 열 받는 것 같아 심히 유감일 뿐이다. 과연 언론은 이건희 회장의 명예박사학위에 어떤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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