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결사대'가 주는 의미
 [독자칼럼]
 [2011-03-19 오후 4:12:00]

일본은 지진 및 원자핵과는 너무나 고약한 인연을 맺고 있는 불행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지진이 많은 나라요, 세계 최초로 원폭을 당한 나라다. 이번 지진해일 재앙으로 제2의 원폭과 같은 비극적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로를 성공적으로 냉각시키느냐 여부에 일본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패의 경우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몇 배에 해당하는 가공할 방사능 피해가 좁은 섬나라를 쑥밭으로 만들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라의 장래를 걸머진 최후의 결사대가 목숨을 담보로 죽음의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 17일 181명에 이어 오늘 최후의 전사 279명이 추가로 투입되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연간 피폭 한도의 수천 배에 달하는 방사성물질이 유출되고 있는 원자로에서 수증기 배출 수작업을 하고 있다. 수증기를 빼내지 못하면 기압 상승으로 원자로가 터져 핵폭발과 다름없는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다. 비록 납 조끼와 특수 방호복을 입었지만 유전인자 변형 등으로 인한 백혈병, 혈액암, 갑상선암 등 각종 암으로 조만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작업이다.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복구 작업에 참여했던 인원 중 28명이 3개월 내에 사망했을 정도다.

이들 결사대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사실상 목숨을 포기한 것이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일본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죽을 준비가 돼 있다“라는 최후의 말을 남기고 그들은 그 곳으로 떠났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치려는 구국정신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가족들의 눈물 젖은 만류에도 '일본을 대참사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비장한 사명감으로 죽음의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름 없는 영웅들의 끈끈한 나라사랑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인생의 참다운 성공은 과연 무엇일까? 돈, 명예, 자신만의 목적 달성일까. 우리나라에선 성공이란 뜻에 '치열한 경쟁, 부정한 방법, 힘의 논리'와 같은 극단적 이기주의의 부정적 이미지가 덧칠되어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고 떠나는 것”을 성공한 인생으로 정의했다. 헨리 포드도 "세상이 나에게 준 것보다 더 많이 세상에 되돌려 주는 것이 성공이다"고 말했다.

진정한 성공의 요건은 세상에 대한 기여다. 자기가 혜택 받은 것 이상으로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바로 성공의 요체다. 온갖 불법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권력과 재물 등 자기만의 이익을 취하는 속물들의 성공과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나만의 성공이 아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그리고 이웃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성취여야만 성공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일본에 출현한 죽음의 결사대는 타인을 위해, 나라를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되돌려 주는 성공한 사람들이다. 비탄에 빠진 일본인들이 그래도 행복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도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하는 이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바로 지난번 연평도 피폭사건 때 젊은이들이 해병대를 전례 없이 많이 지원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비록 돈도 별로 없고 지위도 보잘 것 없는 소시민들이지만, 왜 이들이 더 위대하고 존경스럽고 성공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하는 지금이다. 아무 대책도 없이 무턱대고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고 무책임하게 떠들어대는 우리 집권층 인사들보다 말이다.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돈과 지위를 얻은 들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수치스런 삶보다는 이 사회와 나라에 도움과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았노라고 후손들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성공한 삶이 아닐까 싶다.

                                                    애독자/심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