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法治)는 살아있는가
 
 [2010-12-10 오후 10:08:00]

법치(法治)는 살아있는가
[미디어창]‘그랜저 검사’와 ‘폭력 재벌’의 구속

 

‘죄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그랜저 검사’를 재수사한 검찰이 이번에는 구속시켰다. 또한 재벌2세의 폭행사실을 알고도 수사에 나서지 않았던 경찰이 이번에는 ‘죄질이 매우 나쁘다’면서 역시 구속영장을 청구해 구속시켰다. 법원은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한다던 기본 입장에서 ‘도주, 증거 인멸 우려’를 내세워 영장을 발부했다.

재벌2세의 무지막지한 폭행에 분노한 민심도, ‘그랜저 검사’에 대한 봐주기 수사라며 혀를 차던 언론도 ‘구속’ 자체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제 이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 되며 세인의 기억속에 잊혀지게 될 것이다. 구속은 본격적인 수사의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여론의 관심은 벌써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언론 역시 이를 추종한다.

과거의 전례를 비춰보면, 이 두 사건이 어떻게 처리될 지는 눈에 훤하다. 상투적 수법인 ‘경제발전에 이바지 한 공이 지대하므로’ ‘반성의 자세를 보이므로’ 등의 논리를 내세워 집행유예 등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1심에서 여론의 관심이 여전히 높은 경우 바로 그런 결과가 도출되기는 쉽지않다. 그러나 2심 등으로 갈수록 재벌이나 전직 판사, 검사에게 법치의 준엄함을 실천하는 모습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 두 사건은 전혀 다른 사건이지만 몇가지 공통점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사건을 단편적으로 적당히 넘어가면 한국사회의 법치주의 정착은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자초하는 결과가 된다. 법치주의 확립은 구체적 사건을 통해 강화되는 법이며 법무부는 국민의 법감정을 배반하는 사건에 대해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 두 사건의 첫 번째 공통점은 현제도(수사기관)의 무능함 혹은 무력감이다. 폭행을 상습적으로 일삼은 재벌2세에 대해 경찰이 자발적으로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않는다. 또 다른 재벌 한화그룹 회장 폭행사건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랜저 검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 애초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해 법무부 장관은 세계일보(2010년12월8일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랜저 차량 수사만’했기때문이라며 해명을 시도했다. 설득력없는 해명을 그대로 믿는다면, 검찰의 수사력이 한심한 수준이라는 변명이 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 등의 말은 수십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민의 법감정을 지배하는데는 나름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한국의 수사기관이 정말 ‘무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번에는 스스로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그대로 입증했다.

이 두 사건의 또 다른 공통점은 수사기관이 작심하고 덤벼드니 바로 구속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구속사유도 "재벌 2세로서 막강한 재력과 영향력을 지닌 사회지도인사인 최씨가 마땅히 요구되는 높은 윤리의식과 준법의식을 망각했다",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마치 초법적, 특권적 지위로 착각했다", "유씨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맷값을 지불한 행위는 국가 법질서를 뒤흔들고 국민들에게 큰 분노와 좌절감을 안겨줬다" 등으로 나열하고 있다. 추상같은 법집행 논리, 명쾌하지 않은가. 처음부터 이렇게 했더라면 얼마나 믿음직했을까.

이 두 사건의 또 다른 공통점은 한 사람은 몽둥이로 법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했고, 한 사람은 비리혐의로 역시 법질서를 흔들었다는 것이다. 여기다 두 사람 모두 수사기관으로부터 애초에는 수사대상이 되지않았거나 수사를 해도 ‘봐주기’ 등의 논란에 휩싸이게 했다는 것이다.

이 두 사건의 또 다른 공통점은 대통령의 사면대상자들이라는 점이다. 법치를 일거에 무력화시켜버리는 대통령의 무분별한 사면행태는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도 변함이 없다. 특히 재벌, 법조계 출신 식구챙기기식 사면, 복권은 성탄절, 3.1절, 석가탄신일 등 때만 되면 꼬박꼬박 챙겨줬다. 오늘은 구속이지만 내일은 대통령 사면 특권을 누리는 자들. 문제는 국민 모두가 이런 대통령의 특권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광복절을 계기로 ‘공정사회의 기치’를 높이 내세웠다. 여기는 만인이 법앞에 평등하고 법집행의 공평성 등을 전제로 한다. 돈이 있다고 혹은 권력이 있다고 혹은 자기식구라고 법집행의 투명성이나 형평성에 논란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엄중한 당부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작금에 나타나는 이런 사건을 보면 이 대통령의 ‘공정사회’철학이 수사기관 일선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특히 이들이 지금 당장 구속된 것은 법집행의 엄중함보다는 분노에 찬 여론의 힘 때문에 굴복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황금만능주의를 맹신하는 범법자에게 구속이 아닌 판결로 법치의 준엄함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누구보다 준법의식이 투철해야 할 법집행 최고수사지휘권자 검사가 그 직분을 배신했을 때 가중처벌은 못할망정 ‘무혐의 처분’은 검찰 조직 전체의 수치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처음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수사라인에 대한 문책론이 제기되고 있으나, 감찰 권한을 갖고 있는 대검찰청은 “책임을 물을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일부의 불행한 사건 때문에 재벌 전체, 경찰, 검찰 전체 조직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너무 큰 손실이다. 존경받는 재벌, 신뢰받는 수사기관은 어느날 갑자기 탄생할 수 없다.

이런 뼈아픈 사건들을 통해 재발방지를 위한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특히 대통령의 ‘공정사회’가 헛구호로 끝나지않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을 비롯한 법집행 과정과 일선행정 전반에서 구체적 실천사례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이 두 사건이 최종적으로 어떤 판결로 나타날 것인지는 법치의 현주소를 알아보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