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대표하는 현대무용 안무가 에마뉴엘 갓(Emanuel Gat)
 
 [2010-08-18 오전 11:20:00]

                   

 

송종건무용평론가

 평자는 공연을 직접 보기 전에는 팸플릿을 미리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선입견을 없애고 객관적인 상태에서 작품을 접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물론 흔히 팸플릿의 내용과 실제 공연이 맞아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평론을 쓰기 직전에는 팸플릿의 내용을 정확히 한 번 읽어본다.
 팸플릿의 내용과 평자가 아무런 편견 없이 직접 본 내용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고, 기타 안무가나 무용수들의 경력이나 배경 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안무가”라고 하는 에마뉴엘 갓(Emanuel Gat)의 < Silent Ballet > 와 < Winter Variations > 등 두 작품의 공연이 지난 5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다.
 정말 좋은 공연을 보고 나면 평자는 그 공연에 대해 쓸 칭찬의 내용들이 너무 많아 글을 어떻게 잘 전개시켜 나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을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대부분 쓸 내용이 없어 괴롭기만 하다. 이번 공연에서 이스라엘 출신의 젊은 안무가 에마뉴엘은 자신만의 무용의 경지를 개척한 세계적인 안무가의 모습을 보였다.
 에마뉴엘은 이 세상에는 수천만 가지의 - 사실은 무한한 - 움직임이 있으니, 무용이 무대 위에서 보일 수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무대에서 직접 확인시키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공연을 한다고 무대에 올라가서 한 두 개의 움직임만 간신히 반복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어휘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조악한 안무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제29회국제현대무용제의 개막 작품인 이 공연의 막이 오르기 전 평자는 객석에서, 그동안 이 행사에는 정말 질이 떨어지는 싸구려 해외 무용단이 많이 다녀갔는데, 올해는 어떤 경우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게 되는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에 빠져있지 않을 수 없었다. 무대와 객석을 모두 밝혀두고 8명이 나와 아무런 음향 없이 움직이며 < Silent Ballet >가 시작된다.
무대 중앙에 가만히 밀집하였다가 덩어리지어 천천히 우측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티셔츠와 추리닝차림정도의 의상의 남녀 군무들이 자유스러운 듯이 움직이고 있으나 어떤 완벽히 계산된 틀과 포맷을 느끼게 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다. 무대 사방에 6명이 자연스럽게 흩어져있고, 남녀 2인, 그리고 남자 2인 등의 베리에이션이 상징된 움직임으로 끊임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다시 무대 우측에서 묘한 뉘앙스를 던지는 포즈가 만들어지고 객석은 무대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 무용움직임들은 결코 ‘즉흥’을 빙자한 ‘막춤’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현대무용의 공연에서, ‘즉흥’을 한다고 하면서, ‘막춤’을 이루는 혐오스러운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6명의 무용수들이 서로 팔과 어깨를 끼고 천천히 우측으로 이동 할 때, 남녀 2명이 느리게 조각 같은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에마뉴엘은 상징된 움직임의 의미와 그 움직임의 이동의 섬세한 뉘앙스를 알고 있는 안무가라는 것을 평자가 확인하고 있고, 그는 계속 아무런 음악이 없는 상태에서 극도로 세밀한 움직임과 이미지와 공간을 가만 가만히, 그리고 긴장감이 넘치게 만들어나가고 있다. 다시 9명이 되어 무대를 넓게 하여 서 있다가, 남녀 2인의 움직임으로 정말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수많은 다양한 움직임들이 하나도 흐트러지게 쓰이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우리나라 창작무용 안무처럼 아무런 의미 없이 날뛰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8명의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입체적으로 이루며 끝나던 이 작품에서 에마뉴엘은 스스로가 움직임의 순서와 위치 그리고 작품의 뉘앙스를 자유롭게 요리할 수 있는 요리사라는 것을 보였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 것은 작품에 어떤 음악이나 음향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작품의 긴장감을 결코 놓치지 않으면서도, 뉘앙스를 완벽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무용무대 바닥의 음악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 같이 보이면서도, 흔히 음악이 없는 무용의 촌스러운 ‘마임화’ 현상 같은 것은 결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무용 움직임과 가장 난해한 클래식음악중 하나라고 하는 말러 교향곡과의 완벽한 조화가 놀라웠다. 공연이 끝난 다음 평자는 이 작품의 안무가 에마뉴엘에게 두 개의 질문을 던졌다(그리고 질문 후 잠시 만나 본 에마뉴엘은 정말 겸손하고 진지한 사람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당신의 오늘 공연에서의 움직임들은 즉흥 움직임인가, 혹은 계산된 안무의 움직임인가?”하는 것이었다.
 에마뉴엘의 대답은 정말 정색을 한 상태에서 “나의 움직임과 이미지들은  철저히 내가 미리 안무한 계산된 것들이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평자도 공연을 보면서 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에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 안무가들의 잘못된 ‘즉흥’에 대한 생각, 즉 즉흥은 막춤이라는 생각은 정말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에마뉴엘은 1969년 이스라엘에서 태어나(그렇다면 이제 40정도의 나이이다), 3년 군대생활을 마친 21살 때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아카데미(Tel Aviv Academy)' 학교에 들어가 음악과 지휘를 공부한다. 그리고 23살 때 처음, 아마추어 취미 무용수로 무용을 접한다.
 그 이후 이스라엘 현대무용 무용단에서 직접 무용하고 안무하며, 지금은 이런 세계적인 작품을 안무해내며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빨리 이런 천재적인 현대무용 안무가가 나타나, 우리나라 현대무용을 밝고 투명하고 객관적이고 예술성 높고 감동 깊게 발전시켜 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