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은 과연 朴의 명예회복에 나설까?
 
 [2022-05-13 오후 5:48:05]

     유영하 두 번 추락에서 광야의 시선으로 바꿔야
     인기 아닌 동정,…환상의 오만은 정치인생 마침표

▲ 남강/시인.수필가.작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윤 대통령 내외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으며 축하의 시선을 멈추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는 줄곧 박 전 대통령과 눈맞춤을 하면서 부축했고, 떠날 때는 윤 대통령과 함께 허리 굽혀 배웅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취임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대구 수성을구’ 경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유일한 복심인 유영하를 탈락시켰다. 그것도 박 대통령을 ‘누나’라며 갖은 아양을 떨던 윤상현 공관위원장에 의해서다. 박 대통령 등에 끝장 비수를 보란 듯이 꼽았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유영하의 대구시장 출마 당시 후원회장도 모자라 영상메시지까지 올리면서 대구시민의 지지를 당부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3위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홍준표 의원과 김재원 전 최고위원과 맞붙었을 때 언론에서는 “셀프 홍심(홍준표 마음)이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윤심(尹心)이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박심(박심)이냐?”로 회자되었다.

홍준표의 지지세가 워낙 견고하다보니 유영하의 낙선은 기정사실이지만 적어도 2위 낙선으로 체면치례는 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그마저 이루지 못했다. 현실의 벽은 그만큼 높았다.

돌이켜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박 전 대통령 사저 방문 사죄와 권영세·유영하 양측 대리인들이 말 못했던 이면의 밀약은 대저 무엇이었는지 새삼 궁금하다. 대부분의 예상은 유영하의 대구시장 전략공천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빗나가자 홍준표 의원의 빈자리인 수성을구 전략공천을 위한 밑밥으로 분석했다.

특히 윤상현의 공관위원장 임명이 더욱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마저 무위로 끝났다. 그렇다면 남은 카드는 무엇일까?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 자리는 무려 1600여 곳이라고 한다. 그 어떤 자리일까? 단언컨대 절대 아니다. 그럴 거라면 ‘수성을구’에 나설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중삼중의 배신 올가미 덫이었다. 

▲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을 허리굽혀 배웅하는 장면

필자는 지난 4월 27일 “朴대통령님, 왜 이러십니까?” 주제로 오늘날의 상황을 예측했었다. 요지는 첫째 “朴대통령을 지킨 이들은 가신이 아닌 우국투사들”이다.

오로지 유영하에게만 매달린 외골수의 문제다. 두 번째는 “왜 박근혜일까?”라는 국민들의 사랑과 희망의 측량이다. 세 번째는 박 대통령의 인생가치인 “‘신뢰·원칙’은 일방행이 아닌 쌍방향의 협주곡”임을 역설했다. 이 역시 광범위한 소통을 주문했던 것이다. 탄핵의 도화선 답습을 경계하라는 충언이었다.

그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금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는 탄핵 주범들인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을 헤쳐나날 묘수를 찾고 있을까?

아니면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조용한 일상으로 선회했을까? 무릇 애국을 말하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이라면 애국애족에 기초했던 부국강병의 박정희·박근혜 부녀 대통령을 사모하고 지지하는 한마음에서 여전히 애달픈 오늘이 아닐까. 

박 전 대통령은 변함없는 국리민복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 자신부터 일대 쇄신해야 한다. 박지만 동생 부부와 조카들을 우선 챙기는 기본 인간미를 보여야 한다.

따라서 6년째 ‘탄핵무효·원상복귀’를 목놓아 외치는 아스팔트 애국시민들과 여러 노선에서 고군분토중인 진실투쟁 투사들을 최우선으로 껴안아야 한다.

인간의 도리가 그렇고, 배신이 배신을 잉태하는 악의 고리를 끊어야하기에 그렇다. 그래야 대구의 한계를 극복한 광야의 무한대에서 ‘못다 이룬 꿈’의 텃밭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지금의 박근혜는 ‘선거의 여왕’이란 정치스타가 아닌 동정심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칫 윤석열 대통령 내외의 환대에 명예회복의 미련을 가지거나 ‘박근혜’ 연호 함성의 환상에 빠지는 오만에 휩싸인다면 그것으로 정치인생은 마침표다.

자신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명제를 새기란 고언이다.

<2022. 0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