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황혼’ 민들레 노인대학
 
 [2009-09-22 오후 6:24:00]

 

‘풍요로운 황혼’ 민들레 노인대학

이정희 창원 사파 노인복지회관장의 신바람 일상 따라잡기 

▲ 다양한 감사패와 위촉장을 설명하는 이정희학장
최근 들어 나이 지긋한 분들의 모임에 갈 때마다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9988234.’ 즉,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이틀만 앓다가 사흘째 되는 날 죽는(死) 것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는 뜻이다.  

작고한 소강 민관식(小岡 閔寬植) 전 대한체육회장의 죽음도 화제가 되곤 한다. 99세는 아니지만 정계 관계 체육계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88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돌아가셨으니 참 복 받은 어른이라는 것이다. 별세 전날에도 지인과 테니스를 잠시 즐겼고 밤사이 깊은 잠에 빠진 듯이 타계하셨다고 하니 천복(天福)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그처럼 행복한 죽음을 맞지 못한다. 암 치매 당뇨 등으로 재산 다 날리고 자식들 고생 잔뜩 시킨 뒤 세상을 떠나는 수도 있다. 

일평생 욕심 한번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지냈으나 질병과 사고로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더욱 안타깝다. 그래서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이들이 늘고 있고, 품위 있는 죽음을 연구하는 학회도 생겼다.  

노추에서 벗어나, 무욕의 깔끔함 지녀야 노년이 아름답다 

편안하게 잘 죽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품위 있고 고상하게 늙어 가는 일이다. 직위나 돈이 노년의 품위를 보장해 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누릴 만큼 누렸으나 노추(老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가 있는 반면,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무욕(無慾)과 깔끔한 자기관리로 보기만 해도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이가 있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 ‘존경받는 노후’를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투자와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말부터 각종 모임을 통해 전파되고 있는 ‘나이 들어 대접받는 7가지 비결’을 참고할 만하다. 

노년의 삶을 업그레이드하는 청량음료 같은 지혜라는 의미에서 ‘세븐 업(7-UP)’으로 회자된다고 보면 된다. 황혼에도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괴테"는 노년에 관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노인의 삶은 "상실의 삶"이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다음 다섯 가지를 상실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건강과 돈, 일과 친구, 그리고 꿈을 잃게 된다. 이러한 다섯가지를 잃지 않고 건강한 삶을 마무리 할 수 있으면 가장 큰 행복이고 황혼도 풍요로울 수 있다. 언제나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지혜롭고 활달한 노인은 주변을 활기차게 만든다. 짧으면서도 곰삭은 지혜의 말에다 독창적인 유머 한 가지를 곁들일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이에 풍요로운 노년을 위해 활기찬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정희 학장을 만나봤다.  

그녀는 63세의 나이임에도 청년같은 열정과. 40대가 꿈꾸는 희망을 가진 듯하다는 질문에 “모두 생각의 견인차”라고 손 사레를 날렸다. 이 학장은 97년 민들레모임태동, 98년 민들레노인교실 개강, 99년 노인봉사단, 2000년 보람회설립 이후 민들레 노인예술단원 설립과 동시 노인복지행사, 봉사경연대회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정희학장을 만나보기로 한다. 

10여년 묵묵히 지켜준 가족과 복지회관 선생님들께 감사

“남은 여생, 팔팔하게 살다가 가야지요” 

기자: 처음 이러한 복지에 발을 들여 놓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면요?

이정희학장: 95년 저는 가야국악학원에서 민요나 전통 악기 등 다양한 음악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당시 경로당을 다니며 민요를 불러 드리는 등의 봉사를 마산에서 했는데 제가 창원에 살다보니 애로사항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다 97년도 이던가요, 지역 유지 몇 분과 정보사회연구소에서 지금의 민들레노인복지학교 장소에 노인대학을 시작해보라는 권유를 여러번 받게 되어 저도 사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고 창원이라는 장소도 적절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이렇게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봉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웃음) 

기자 :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해오신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이정희학장 : 5~6년전쯤이던가요, 우울증에 걸려 잠도 잘 못주무시고 항상 우울해 하시던 학생이 한분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구도 치고 경로당에 공연도 하러 다니시고 하다보니 어느새 그분은 활발한 성격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잠도 못자고 했었는데 너무 고맙다”고 그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순간 이곳 저곳에서 다른 어르신들이 “나도 그랬는데...” “여기는 너무 좋은 곳이야...” 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너무 감동적이라 눈물도 흘리고 되새겨 보면 제가 지금까지 복지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건 에피소드는 아닌데 이 자리를 빌어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함께 해준 우리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금전적으로 혜택도 받지 못하는 가운데 묵묵히 옆에서 오히려 저보다 더 열심히 자리를 지켜주신 우리 선생님들이 있으셨기에 우리 복지학교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이정희학장: 이러한 일을 하게 되면 사실 가족들의 반대가 심한 것이 사실인데 그런면에서 저는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저의 가장 큰 후원자는 다름 아닌 시어머니 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한 마음만 드는데 시어머님은 항상 “내가 설거지 할게 빨리 학교로 가”라고 말씀하시며 저를 응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저를 응원하게 만들어 주신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시어머님이 적극 응원해주시니 다른 가족들도 저를 믿어주었습니다. 지금은 큰딸이 저를 이어 복지를 향해 한발 내딛은 상태고 모든 가족이 지금은 저의 후원자입니다. 

* 인터뷰를 마친 이정희 학장은 아직도 못다이룬 꿈이 있는 듯, 창원에도 노인들을 위한 미니골프장을 개설, 모두를 위한 노력에 시간이 아까울 정도라며 서둘러 현장으로 나가는 뒷 모습에서 진한 황혼의 아름다움이 배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