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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이 민주화 운동인 이유

[2020-12-10 오후 2:51:57]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용식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0518일 새벽부터 527일 새벽까지 열흘간 전라남도 광주시와 전라남도 전역에서 일어난 무장 봉기를 사태 초기에는 5.18 광주사태로 불리우다가 지금은 5.18 민주화 운동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이 사건을 기획하고 참여했던 인물들이 평생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는 점에서 이 사태는 민주화 운동으로 불리워야 할 것이다.

이 운동의 우두머리라고 알려져 있는 김대중씨의 민주화 활동에 대해서는 따로 더 언급할 내용은 없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북한에 있는 우리나라 간첩(휴민트) 명단을 북에게 알려줘 북한이 그들을 모두 제거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는 소문이 있고, 그는 취임 직후 당시 국가정보원(이전 명칭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대공 수사(간첩 수사)를 담당했던 수사관을 모두 해직시킨 점, 군과 경찰에서 대공 수사를 담당하는 부서를 축소시켰던 점들로 미루어 보더라도 5.18 사태를 촉발한 주역인 그가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1975, 북한 간첩들에 포섭되어 당시 박정희 정권을 전복하려던 학생 지하 조직인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제적되었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나서 잠시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았던 최규하에 의해 복학되었던 복학생들이 김대중을 도와 5.18 사태를 촉발시켰는데 이 중에서 이해찬과 장기표는 언급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까지 민주당 대표였던 이해찬은 당시 김대중을 도와 5.22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규모의 반정부 무장 폭동을 기획한 혐의로 투옥되어 24개월의 옥고를 치루게 된다.

당시 김대중이 대표로 있던 국민연합의 기획부장 장기표는 북한 라디오방송을 청취하여 국민의 소리라는 이적 성명서를 작성하였고, 1972년에는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었는데, 5.18 사태 때 광주에 남아있던 윤상원에게 폭동을 지시하였다는 혐의를 받고있는 인물이다. 그는 1990년 김낙중 등과 민중당을 결성하였는데 김낙중은 북한에서 내려보낸 여자 간첩 김선실에 포섭된 자로 1990년 북한공작원과 접선하고 공작금 210만 달러와 공작장비인 무성 권총, 독약 앰플 등을 받았다. 이 자금으로 장기표는 민중당을 결성할 수 있었다.

스스로 고등학교 시절 문제아라고 일컬은 문재인은 경희대 법대 출신으로 “1?2학년 때는 학교도 잘 안 가고 시험도 빠졌다. 친구들과 유랑여행을 다니며 심한 '청춘앓이'를 했다. 대학 3학년 때인 1974년 교내 첫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이듬해 4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8명이 사형 집행당한 다음 날 유신 독재 화형식을 주도하다 구속돼 서대문구치소에 수감 제적당했다.”고 자신의 책 <운명>에서 제적된 사유를 밝히고 있다.

1974년 제적되었다가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복학된 그는 1980515일 총학생회 간부로 경희대 시위대를 이끌고 남대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있었다. 그러던 중 경희대 시위대에 섞여 있던 자로 보이는 괴한들이 시내버스를 탈취하여 남대문을 돌아 문재인의 시위대와 대치 중이던 전투경찰을 깔아 뭉개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당시 24살 전경이 즉사하고 4명이 다치게 되었고 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문재인은 청량리 경찰서에 수감되었다. 그 후 그는 경희대 총장의 보증으로 풀려나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어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너무 열심히 일하다 보니 국회의원 때는 물론 대통령인 지금도 국가 정상 회담 등 중요한 회의때에도 졸거나 자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광주 현지에서 5.18 무장폭동을 기획한 인물로는 윤한봉을 빼 놓을 수 없다. 윤은 1975년 당시 얼떨결에 가담한 민주청년학생련합 이하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룬 후 박정희 정권에 골수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고 정권 전복의 기회를 노리던 중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 후 부마사태에서 영감을 받아 5.18 무장 폭동을 기획하게 된다. 폭동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무장을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전라남도 전역에 흩어져있는 무기고와 탄약고를 털어 무장을 해야 한다며 직접 답사를 하여 그 위치를 정밀지도에 표시하여 누군가에게 전달하였다.

5.17일 밤 11시에 계엄령 전국 확대 소식을 듣고 광주를 탈출하여 몸을 숨겨 지내다가 이듬해에 밀항하여 미국으로 건너간 뒤 북한과 접선하여 1990년 임수경을 월북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미국 내에서 한국청년연합 이하 한청련을 조직하여 북한과 협력하여 대한민국 정부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였다.

윤상원, 그는 함께 폭동을 준비해 오던 윤한봉은 물론, 박관현 등 학생 지도부까지 모두 떠난 광주에서 홀로 자신이 지도하던 야학생들을 중심으로 전단지를 만들거나 데모대에 합류하여 폭동에 가담한 자로 광주사태 마지막 날인 526일에 데모대 대표를 자청하여 도청에서 무장대치하던 중 지니고있던 수류탄이 잘못하여 터지는 바람에 사망하였다.

서경원, 그는 농민 대표로 광주 폭동을 준비하였다. 당시 카톨릭 농민회(가농) 회원이었던 그는 함평 고구마 사건으로 반정부 투쟁에 가담하였고 이런 계기로 윤한봉, 윤상원 등 광주 폭동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는 그후 가농 회장직을 맡아 정치에 입문하여 김대중이 평민당 대표로 있던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그해 7월 국회의원 신분으로 독일에서 북한공작원과 접선하여 월북하여 북한으로부터 공작금 5만달러를 받았고 일부 자금을 김대중에게 전달하였고, 김대중의 대북 친서를 전달하는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복역하였다.

19805.18당시 광주 대동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던 윤기권은 경찰차를 부수고 경찰 15명을 체포하여 끌고 다닌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광주 민주화운동 유공자 보상금 2억을 받은 직후 월북하여 꿈에도 흠모하던 김일성의 품에 안긴 인물이다. 2000년 현재 북한에서 광주민주화운동 선전원으로 일하고 있다.

장두석은 최연소 빨치산출신으로 5.18 당시에 카톨릭센터 2층에 양서조합(독서실?)을 운영하던 자로서 물심양면으로 광주 무장 폭동을 배후에서 지원하였고 정체불명의 폭동 지도부가 장악하고 있던 도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무등산 증심사 가짜 중 손성모. 그는 5.18 폭동을 지원하기 위해 북에서 남파된 간첩으로서15.18 사태 후 8개월 뒤에 문경시에서 체포되어 간첩혐의로 복역하던 중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있던 1990년 아무 대가없이 북으로 송환되었다. 그는 6.25가 터지자 북한군에 자진 입대하여 국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던 자로 북한군을 따라 월북하여 김일성 종합대학 역사학부를 졸업한 후 함흥공과대학 교원으로 배치돼 역사학을 강의하다가 간첩으로 선발되어 광주사태를 뒤에서 지휘, 준비할 목적으로 19805월 전남 해남으로 남파돼 승려로 위장하여 광주폭동을 돕는 활동하다가, 19812월에 경북 문경시에서 체포되었다.

간첩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26개월 복역하다가 199912월 김대중 정부의 특사로 대구교도소에서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되었다. 김대중은 손성모 등 송환을 희망하는 북한 간첩 63명을 20092일 북한으로 돌려 보냈고 송환된 63명 전원이 조국통일상과 노동당원증을 받았으며 대형 아파트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약재 등을 공급받았다. 북한은 19907월 제정된 조국통일상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공헌한 애국인사'가 수여 대상이라고 한다.

이상의 5.18 주역들이 평생을 거쳐 <조국의 민주화>에 헌신한 점으로 볼 때 5.18 광주 폭동이 민주화 운동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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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헬기가 사격을 했다고라?

소가 웃을 일이다. 무장 헬기가 뜬 적도 없는데 어찌 사격을? 또 하나의 파렴치 거짓 증인이 나선 모양이다. 어찌 광주에는 이런 인간들이 줄을 잇는가?

풍수지리설이나 전라도 인종설을 들추지 않아도 이런 거짓말에 너무 익숙해져서 새로울 것은 없다. 이런 학설의 신빙성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아무리 거짓말을 하더라도 법정에서는 그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증거도 없이 증인만 내세워 목격담만 떠벌려 봤자 검은 속내만 들킬 뿐이다.

무장헬기 사진 한 장 없이, 총쏘는 장면 사진도 없이, 기관총 탄피도 하나 없이, 탄흔도 하나도 없이 이걸 증명할 수 있는 능력자는 누구일까? 광주 검찰이나 판사의 판결이 궁금하다.

무장헬기 사격을 주장한 또 다른 사람들은 있다. 바로 북한 1982320일 북한의 조국통일사에서 발행한 대남공작역사서 주체의 깃발에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에서 광주사태때 무장헬기 사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런 주장 뿐 아니라 계엄군이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 내동댕이쳐 죽였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지금 5.18 세력은 이 책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아무 근거도 없이 무장헬기 사격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다음 번에는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내동댕이쳤다는 장면을 목격한 목격자가 나타날 것같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법원은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번 재판에서 광주 5.18 측이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다. 난데없는 목격자나 찌라시, 언론의 거짓 기사가 아닌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오로지 기댈 곳이라고는 미친 검사나 판사의 재량에 의존할 수 밖에. 그래서 자기 관할도 아닌데 광주 법원에서 재판을 하겠다고 나선 모양이구나. 미세먼지보다 더 독한 것이 서려있는 광주의 봄이다. 

*이 글은 2019319일 작성된 것임.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용식

 

여성신문(womenis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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