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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여권으로 미국 비자 받은 김정일 미스터리

[2018-03-02 오후 9:22:00]
 
 
 

 

1997년 체코 주재 미국 대사관 통해. 망명 연습이었나?
 
*조갑제닷컴 자료글입니다.

로이터통신이 김정은과 그의 선친 김정일이 서구 나라 여행을 위해 가짜 브라질 여권을 사용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북한 대사관은 답변을 거부하고 있고, 브라질 외무부는 진상 조사에 들어갔다.

로이터통신은 여권은 출생지가 상파울루로 돼 있는 브라질 국민 여권이지만, 여권의 주인은 김정은과 그 아버지 김정일이었다고 전했다. 둘의 여권은 1996년 2월 26일 체코 프라하의 브라질 대사관이 발행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보안 당국이 안면인식 기술로 사진이 김정은 부자의 얼굴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로이터는 이 여권 사본을 서유럽 보안 당국으로부터 확보했으며, 익명을 요구한 5명의 고위 보안 요원은 이들 부자가 이 여권으로 최소 서유럽 2개 나라에 비자를 신청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아래는 조갑제 기자가 '1997년 김정일이 브라질 위조 여권으로 미국 입국 비자 신청을 했다'고 월간조선 2005년 2월호에 게재한 기사이다. 아래 기사에 등장하는 김정일의 위조여권이 이번에 로이터통신이 보도한 브라질 위조여권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체코 주재 미국 대사관에 브라질 여권과 도미니카 여권을 가진 세 명이 미국 입국 비자 신청을 하였다. 한 명은 여인, 두 사람은 남자였다. 사진 상 세 사람 모두 동양인이었다. 이름으로 보아 귀화한 한국인으로 추정되었다. 미국 대사관은 이 세 사람에게 비자를 발급했다. 

입국 비자를 내어준 지 몇 달 뒤 미국 정보기관원은 우연히 비자발급 대장에 붙은 사진을 조사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 비자를 발급받은 한 남자는 김정일, 다른 남자는 비자금 담당 비서 박용무, 그리고 여자는 김정일의 애첩 정일선(마카오에 별장을 갖고 있다)으로 밝혀진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의 후속 조사결과 朴과 정일선은 미국을 여러 번 들락날락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물론 위조여권으로써. 김정일은 진정으로 미국에 가려고 했을까. 

   
   이런 일이 있은 지 1년 뒤인 1998년 5월 김정일의 愛妻(애처) 고영희(사망)의 여동생 고영숙(당시 46세)과 그의 남편 박모(당시 40대 후반)가 스위스 주재 미국 대사관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고영숙 부부는 스위스에서 유학 중이던 김정일의 아들들(김정철, 김정은)을 뒷바라지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스위스 은행에 약 40억 달러의 비자금을 예치하고, 레만 호숫가에 두 채의 빌라를 사두고 있었다. 
   김정철-김정은 형제가 살았던 빌라는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 외교관 정일선’ 이름으로 등기가 되어 있다. 고영숙은 ‘정일선’이란 이름의 외교관 여권을 갖고 다녔다. 마카오에 별장을 가진 김정일의 첩도 이름이 정일선이다. 여러 명의 정일선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일 망명 주선하겠다” 
   
   고영숙의 남편 박모는 미국에서 정보기관의 관리 하에 살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했다. 김정일이 뉴욕 證市(증시)에 투자한 사실을 제보하여 이를 동결시키도록 했고, 스위스 은행에 예치한 金의 비자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고 한다. 高의 남편 朴은 엉뚱하게 들리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이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다. 내가 나서서 그를 미국으로 망명하도록 주선할 용의가 있다.” 
   북한의 對南공작부서 출신 한 탈북자는 “고영숙이 미국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김정일이 일부러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미국 측의 반응도 보고 자신의 망명 연습 삼아 말이다”라고 말했다. 
   이 무렵 미국 정보기관은 북한의 조선민항 여객기가 뚜렷한 목적도 없이, 손님도 태우지 않고 취리히 공항에 가끔 오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잠정적인 결론은 김정일이 스위스로 망명할 때를 대비하여 연습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 무렵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도 몇 달 간이나 유럽으로 나가 안 들어온 적이 있었다. 김정일은 권총을 곁에 두고 잤는데, 고영희가 치웠다고 한다(‘김정일의 요리사’의 著者 후지모토 겐지 증언). 김정일에 대한 암살, 쿠데타 모의가 잇따라 적발되던 시기였다. 
   
   1997년 11월엔 노동당의 대외정보 조사부(한국 국정원의 해외부서에 해당) 부장을 지냈던 권희경이 러시아 KGB와 내통했다는 혐의로 처형되었다. 그 몇 달 전엔 농업담당 비서 서관희가 안기부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다. 청진 주둔 제6군단 장교들이 쿠데타 모의를 했다고 하여 집단 처형되었다. 김정일은 인민보안성(사회안전부의 후신)에 특명을 내려 ‘심화조’를 조직, 당군정민(黨軍政民)에 걸친 일대 숙청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약 3만 명이 적발되어 처형되거나 수용소로 갔다. 매년 50만 명 이상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을 때였고 黃長燁(황장엽) 비서가 북한체제의 붕괴를 예감하고 한국으로 탈출했을 때였다. 
   이런 시기 김정일이 미국 입국 비자를 신청한 것이다. 한 전직 국정원 간부는 “망명 연습일 수도 있고, 김정일의 부하가 미리 받아놓은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1997년 前後에 미국 정보기관도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예감하고 김에 대한 망명공작을 검토했다고 한다. 망명 후보지는 스위스와 러시아, 그리고 미국이었다고 한다. 
   
   
   김대중이 살려준 김정일
  
   
   1997년 무렵엔 북한정권 내부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 정보기관 안에서도 “김정일 정권이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핵문제도 그때 해결될 터이니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우세하였다. 우리 정부는 1997년 7월30일 ‘북한 急變 30일 계획서’를 만들었다. 김정일 정권이 무너져 하루 수천 명 수준의 탈북자가 발생할 때 발동하기로 한 계획이었다. 남북 회담장에서 만난 북한 要人(요인)들이 잘 아는 남측 인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가족을 잘 부탁한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은 생존에 급급하였고 노동당 간부층에선 아직도 김정일에 대한 신뢰가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한국과 미국이 ‘무너져 주기’를 바랄 뿐 붕괴공작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일의 對南(대남)공작이 성공한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들고 나오자 역이용 전략을 세우고 親北(친북) 일본인 사업가 요시다 다케시를 통하여 현대그룹의 鄭夢憲(정몽헌) 회장에게 ‘최고위급 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전한다. 김대중 정부는 이 미끼를 물었고 싱가포르와 북경에서 비밀접촉이 벌어진다. 놀랍게도 ‘민족문제’를 논의해야 할 이 자리에 요시다와 김대중 정부 실세들의 ‘비자금 창고지기’로 알려진 武器商(무기상) 김영완씨도 따라다닌다. 對北(대북)송금사건 수사 기록을 精讀(정독)해보면 남북간의 대화는 회담 전에 남측이 돈을 얼마나 줄 것인가를 놓고 깎았다가 올렸다가 하는 흥정으로 始終(시종)하고 있다. 김대중은 ‘실정법에 다소 어긋 난다’는 보고를 받고도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계좌 등으로 4억5000만 달러의 불법송금을 방조한다. 
   
   2000년 6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김정일을 찾아가 만나면서부터 김정일 정권은 위기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좌파정권 10년간 100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과 물자가 북한정권에 제공되었다. 김정일은 이 돈으로 핵폭탄과 미사일을 개발하였고, 6·15 선언을 이용하여 남한내에 거대한 친북세력을 구축, 韓美(한미)동맹 관계를 이간질 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김정일의 ‘햇볕정책 역이용 공작’은 넘어가는 체제를 살려냈다는 점에서 세계 첩보사상 가장 성공한 정치공작으로 평가될 것이다. 

/조갑제닷컴 자료입니다.

여성신문(womenis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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