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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덕이 없으면 내 편도 곧 적이 되는 법이거늘

[2017-01-30 오후 10:18:00]
 
 
 

군주가 덕이 없으면 내 편도 곧 적이 되는 법이거늘

 

예부터 전해지는 말에 ‘법지불행자상정지(法之不行自上征之)’란 말이 있다. 이는 “법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윗사람이 먼저 범하기 때문이다.” 곧,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은 위에 있는 사람부터 법을 어기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 위(魏)나라 사람이었던 공손앙은 젊었을 때 형명학(刑名學)에 심취하여 명재상 공숙좌를 스승으로 모셨다. 공숙좌가 병으로 죽기 전, 주군인 혜왕에게 공손앙을 천거하며 당부하기를, “만일 그를 데려다 쓰지 않으려거든 그가 절대 국경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했지만 혜왕은 공숙좌의 말을 무시했다.

이후 공숙좌가 죽자, 예상대로 공손앙은 위(魏)나라를 떠나 천하의 영재들을 구한다는 진(秦)나라의 효공을 찾아갔다. - 훗날 이 일로 공손앙을 등용시키라는 공숙좌의 말을 무시했던 혜왕은 위(魏)나라에 비해 너무도 가난하고 약소국이었던 진(秦)나라의 공격에 도성까지 빼앗기는 큰 수모를 겪게 된다 -

진(秦)나라로 간 공손앙(상앙)은 효공을 알현(謁見)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농업을 발전시키고 장병들을 장려해야 합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공을 세운 사람에겐 마땅한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사람에겐 응당한 엄벌을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조정의 위신이 서고 모든 개혁이 뜻대로 시행될 수 있습니다.”

공손앙이 주장한 부국강병의 방책은 실로 효공의 뜻과 하나같이 부합(符合)되는 말이었다.

효공은 상앙의 영특함을 한눈에 알아보고는 즉각 등용시켰다. 2년 후, 효공은 조정을 통제하게 되고 임금의 자리마저도 튼튼해지자 상앙을 진(秦)나라의 고위직인 좌서장에 임명하고 제도 개혁의 권한을 일임했다.

이에 상앙은 변법의 개혁을 단행했는데, 범죄자와 일정한 친족 관계가 있는 자에게 연대적 책임을 지게하고 처벌하는 제도인 이른바 ‘연좌제(緣坐制)’와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는 이른바‘신상필벌(信賞必罰)’의 법 제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를 개혁하는 법령을 만들기는 했지만 국민들이 과연 그를 믿고 새 법령을 지키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하루는 상앙이 도성의 남문 밖에다 석 장(丈) 높이의 나무를 세우게 하고는 “이 나무를 성 북쪽으로 메고 가는 자에게는 금 10냥을 상으로 준다.”는 영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문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서로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나무를 메고 가려 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자신이 내린 영을 믿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상앙은 상금을 금 40냥으로 올렸다. 그러나 상금을 올리면 올릴수록 사람들의 의심은 더욱 커졌고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처럼 사람들이 망설이고만 있을 때 한 사람이 나서더니 “내가 메어보겠소.”하고 그 나무를 뽑아 어깨에 메고 북쪽 성문까지 걸어갔다. 그러자 상앙은 그 사람에게 약속했던 40냥보다 오히려 더 많은 금 50냥을 하사하였다.

이 소문이 퍼지자 온 나라가 들끓게 되었다. 백성들은 “좌서장 상앙이야말로 한 번 말하면 그 말대로 하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런 방법으로 백성들의 믿음을 얻게 된 상앙은 자신이 기초한 새로운 법령을 전국에 공포했다.

상앙의 변법(變法)이 시행된 후, 진(秦)나라는 농업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으며 군사력도 강해졌다. 얼마 후 진(秦)나라는 위(魏)나라를 공격했는데, 황하 서쪽에서 동쪽까지 쳐나가 끝내는 위(魏)나라의 도성까지 함락시켰다. 여세를 몰아 상앙은 두 번째 개혁을 단행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많은 귀족과 대신들이 반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자가 죄를 범했다.
태자는 상앙을 처음부터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또 백성들의 불만이 너무도 큰 것을 보고 고의로 일부 대신들과 백성들을 대표해서 직접 반대하고 나선 행동이었다. 이에 상앙은 한편으로는 노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둘도 없는 좋은 기회다 싶어서 효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법지불행자상정지(法之不行自上征之). 법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것은 윗사람이 먼저 범하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법령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다 지켜야 합니다. 관리들이라고 지키지 않으면 백성들은 조정을 절대 믿지 않게 될 것입니다. 태자가 죄를 범했으면 그를 가르친 스승이 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고는 태자의 스승들인 공자 건과 공손 가의 죄를 물어, 하나는 코를 베고 하나는 얼굴에 자자(刺字, 문신을 새기는 형벌)를 했다. 그러자 귀족과 대신들은 감히 새로운 법을 어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또 이 소문이 나라 전체에 퍼지자 다음 날부터 감히 새 법에 따르지 않는 백성이 없었다. 이렇게 10년이 지나자 진(秦)나라는 점점 부강해졌다.

- 길에 떨어진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는 사람이 없고, 산에는 도적이 없어졌으며, 백성들의 살림은 넉넉하고, 인구도 많아지고, 병사들은 전쟁에서 용감하고, 사사로이 싸우는 일을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상앙은 또 새 법이 불편하다고 말한 사람과, 좋다고 일부러 찾아와서 말하는 사람들을 낱낱이 기록하게 한 다음 이들 모두를 변방으로 보내 버렸다. 이리하여 진(秦)나라가 통일천하를 이룰 수 있는 힘의 바탕이 상앙의 이 법령에 의해 다져지게 되었다.

그러나 효공이 죽고 태자가 임금이 되던 그날, 상앙은 묵은 원한으로 인해 수레로 몸을 찢어 죽이는 거열(車裂)이라는 무서운 형벌로 죽고 말았다. 』
위의 이야기 속에는 ‘도불습유(道不拾遺)’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너무나 무서워서 길에 떨어진 남의 물건을 함부로 줍지 못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또한 《한비자(韓非子)》에도 도불습유와 관련된 춘추시대 정(鄭)나라 재상이었던 자산에 관한 글이 있다.

『 자산은 농지 분배를 실시하고 지배층의 특권의식을 불식시켰으며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면서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신상필벌의 원칙을 따랐다. 그랬더니 그가 다스린 지 5년 만에 나라에 도둑이 없고,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함부로 주워가지 않았으며, 길가의 과실나무에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도 함부로 따가는 사람이 없는 등 질서가 잡히고 백성들의 생활이 윤택해졌다고 한다. 』

사마천이 지은 역사서《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나오는 도불습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魯)의 정공 14년, 56세가 된 공자는 지금의 법무장관격인 대사구가 되어 법을 집행하는 일을 맡아 하였다. 3개월이 지나자 그의 덕화정책(德化政策)이 노나라의 구석구석에까지 미쳐 물건을 사고팔 때 결코 속이는 법이 없어졌고, 남녀 간에 음란한 일이 사라졌으며, 길에 떨어진 물건을 함부로 줍지 않아 외국의 여행자가 노나라에 이르면 관의 손을 빌지 않고도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수 있어 여행자들을 만족시켰다.”

이와 같이 도불습유. 즉,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법이 잘 지켜진다는 것이지만, 그렇게 만드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고, 그것이 나라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도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수차례의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을 배출했었다. 후보시절의 당선만 된다면 조국을 위해 목숨마저도 내던질 것만 같던 결연한 각오들이 이상하게시리도 정식으로 대통령이 되고 일정시간이 흐르면 무소불위의 제왕적 지위를 가지게 되면 하나같이 없어지고 부패하여 조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당선되기 전에는 분명 죽을 각오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사명을 다하겠다고 부르짖던 자들이 당선만 되고나면 바로 얼마 전의 외침을 망각하고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주고 부패해버리는 것에 대한 필자의 소견은 군주가 되기 위한 자 혹은 군주가 된 자들의 덕(德)이 턱없이 모자란 까닭에 연유한다고 본다.

군주가 군주로서의 덕(德)을 닦지 못하면 한 배를 탄 사람들조차도 적이 될 수 있다는 중국 전국시대의 유명한 병법가 오기(吳起)의 고사에서 유래된 ‘주중적국(舟中敵國)’의 속뜻을 자세히 짚어보고자 한다.

『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저자이자 당대 최고의 병술가로 잘 알려진 손무(孫武: 孫子)와 병칭되는 병법가 오기는 통상 오자(吳子)로 통칭된다.

오기는 증자(曾子)에게 배우고 노군(魯君)을 섬겼다.

제(齊)나라가 노(魯)나라를 침공하였을 때, 노나라는 그를 장군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오기는 당시 제나라 여자를 아내로 삼고 있었으므로 의심을 받는다고 아내를 죽여 충성을 나타낸 뒤, 노(魯)나라 장군으로서 제(齊)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그러나 노(魯)나라 사람들이 오기를 모질고 박정(薄情)한 사람이라고 왕에 고하여 노(魯)나라를 떠나게 되었다.

오기는 이후 위(魏)나라로 가서 문후(文侯)를 섬겨 장군이 되고, 진(秦)나라를 쳐서 5성(城)을 빼앗았다. 평소 병사들을 사랑하여 생활을 같이 하였으며 그런 그를 병사들은 잘 따랐기에 오기는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위(魏)나라의 장군이 될 수 있었다.

문후가 죽자 그의 아들 무후(武侯)를 섬겼는데,

한번은 무후가 장군 오기와 함께 배를 타고 서하를 둘러본 일이 있었다. 배가 강의 중류에 이르자 무후는 오기에게 “강산이 이렇게 험준하여 아름다우니 우리 위(魏)나라의 보배로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오기는 다음과 같이 아뢰어 무후를 감격시켰다.

“나라의 보배는 군주의 덕(德)에 있는 것이지 강산의 험준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삼묘씨(三苗氏)의 나라는 왼쪽에 동정호가 있고 오른쪽에 팽려호가 있어 실로 그 지세가 험준하였지만 군주가 덕(德)을 닦지 않아 우(禹) 임금에게 멸망당하였습니다. 또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 살던 곳은 왼쪽에 황하와 제수가 흐르고, 오른쪽에 태산과 화산이 솟아 있으며, 남쪽으로 이궐이라는 깎아지른 절벽과 북쪽으로 양장산을 면하고 있어 또한 가히 험준함을 자랑하였지만 정치가 어질지 못하여 탕(湯) 임금에게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또 은(殷)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의 거처는 왼쪽에 맹문산이 있고, 오른쪽에 상산이 있었으며, 남쪽으로는 황하가 도도하게 흘러 험준하였지만 역시 정치를 행함에 덕(德)이 없어 결국 무왕에게 살해당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나라의 보배는 군주의 덕(德)에 있는 것이지 지세의 험준함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군주께서도 덕(德)을 닦지 않으신다면 이 배 안에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적국의 편이 될 것입니다 / 약군불수덕(若君不修德), 주중지인진위적국야(舟中之人盡爲敵國也).”

그러나 위(魏)나라 공주가 그를 싫어하였기 때문에, 다시 위(魏)나라를 떠나 초(楚)나라에 가서 도왕의 재상이 되어, 법치적 개혁으로 초(楚)나라를 강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초(楚)나라 귀족들의 질시를 받아, 도왕이 죽은 뒤 대신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피살되었다. 《오자》라는 병법에 관한 책을 남겼는데, 흔히 중국 역사의 병법칠서 중 가장 으뜸가는 병법서로 손무의 병서《손자병법》과 오기의 병서《오자》를 손꼽으며 이 둘을 합쳐 《손오병법》이라 부른다. 』


주중적국(舟中敵國)은 《사기(史記)》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주중적국은 군주가 덕(德)을 닦아 올바른 정치를 펴지 않으면 자기편도 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부정부패로 국가운영이 사실상 마비된 이 위태로운 처지를 하루빨리 매듭짓고 위기로부터 우리를 구할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야 할 텐데...

개개인의 능력으로는 전 세계에서 으뜸가는 최고의 민족이 어찌 이토록 오랜 시간동안 세계의 정상에는 설 수 없는 것일까. 반만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항상 위기 때마다 목숨을 내걸고 나라를 구하겠다며 등장한 민족지도자들은 여럿 있었으나, 그런 그들을 기존 세력들은 당당히 새로이 등장한 민족의 영웅이라고 받아들이고 한데 힘을 모아주기는커녕 갖은 중상과 모략을 일삼으며 깎아내리려는 우리민족 특유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배타성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 상권(上卷)에 ‘등동산이소노국(登東山而小魯國) 등태산이소천하(登泰山而小天下)’란 말이 나온다.

“공자께서 노(魯)나라 동산에 올라가서는 노(魯)나라를 작게 여기시고,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를 작게 여기셨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를 구경한 사람에게는 어지간한 큰 강물 따위는 물같이 보이지가 않고 성인의 문에서 배운 사람에게 어지간한 말들은 말같이 들리지가 않는 법이다.”

이는 태산에 올라가면 천하가 조그맣게 보인다.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은 것을 안다. ‘큰 진리를 깨우친 사람은 그만큼 사고나 행동의 폭이 넓어져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도 거침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사람은 그가 있는 위치에 따라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곧 견문이 넓어지면 뜻이 커지고 눈과 귀가 열린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높은 학식을 갖추고, 제 몸을 낮출 줄 아는 ‘겸손(謙遜)’과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덕(德)’을 반드시 가슴속에 새기어 갖추고 있어야 하겠지만...

무릇 한 나라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라면, 범인(凡人)들의 사유(思惟)의 차원과 눈높이를 훌쩍 뛰어넘어 앞날에 도래할 크고 작은 일들을 미리 예측하고 넘겨다보는 혜안(慧眼)으로 우리 백성들을 소박한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진정 우리 모두가 그토록 갈망하는 태평양시대의 중심 속에 대한민국을 정상에 우뚝 세워 놓을 새로운 지도자상이 아닐까? 과거 대통령들은 당선 전과 후의 모습이 너무도 확연하게 달라졌다. 그것이 바로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 또는 먼 시간이 흐른 후세에 역사가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기록하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 대한민국은 당면한 국가의 이 위기사태를 잘 수습하고 새로운 시대의 새 지도자는 좌우간의 이념대립으로 반대진영의 무차별적인 반대를 위한 반대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던 제도적 모순을 개혁을 통해 바꿔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들이 바라는 바이고 그것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사명인 것이다.

국민을 쉽게 보고 국민의 뜻을 거역하는 정치인의 말로는 늘 같더라.

/한림(漢林) 최기영 > ericchoi11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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