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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 까지는’

[2016-10-27 오전 11:07:00]
 
 
 

-‘모란이 피기 까지는’

여러 해 전에 전남 강진에 있는 김영랑의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햇살이 뜨겁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모란이 피기 까지는
나는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비교적 넉넉한 농가에 태어난 영랑은 서울에 유학하여 휘문의숙에 다니다가 고향에 내려와 3‧1운동에 가담한 죄로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일본 청산학원(대학) 영문과에 입학을 했으나 1923년에 터진 관동대지진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1930년대에는 정지용‧박용철과 <시문학> 동인으로 활약했고 해방을 맞아 대한독립촉성군민회를 결성하고 대한청년단장으로 활동했으나 6‧25사변이 터진 1950년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라면 누구에게나 그와 비슷한 ‘꿈’은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3‧1운동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8‧15해방에 감격했던 우리 세대가 다 90을 눈앞에 바라보거나 90의 고개를 이미 넘었지만 그 사이에 많이 떠나고 이제는 몇 남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내 친구들에게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큰 소리로, 힘주어 외칩니다. “남북이 통일되는 것을 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 - 이것이 나의 신념이요 나의 동지들의 꿈입니다. 해방의 기쁨과 6‧25의 고난을 몸소 체험한 우리들의 세대입니다.

세브란스 병원의 특실에 누워있던 내 친구 방우영을 찾아가 내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방 회장, 가면 안 돼! 방 회장은 고향인 평북 정주(定州)에 살아서 가봐야 하고 나는 내가 태어난 평남 맹산(孟山)에 가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어!” 내 친구도 병고에 시달리는 수척한 모습으로 긍정적인 표정을 지었고, 그 날 이후 며칠은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고 전해 들었었는데!

‘모란이 피기 까지는’ 우리는 우리들의 봄을 기둘리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포기하면 안 됩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키에르케골의 말대로, ‘절망’입니다. 봄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봄이 오고야 맙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큰 꿈을 가진 한반도가 하나가 되어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날이 곧 오리라 믿고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여성신문(womenis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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