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사회의 형사정책

▲ 이정민지소장
법무부 창원보호관찰소 밀양지소장 이정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위세를 떨쳤다. 각 병원과 보건소에 이를 문의하는 전화가 쇄도하였고, 항바이러스제를 손에 넣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들이 동원되기도 하는 등 우리 시민들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손 소독기가 등장하였다. 뉴스에서는 연일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들을 공식 집계라도 하는 듯 했다. 이처럼 신체의 어두운 면인 질병에 대하여 우리는 매우 민감함에도 사회의 어두운 면인 범죄에 대하여는 둔감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미국, 프랑스, 캐나다는 물론이고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 인도 등지에서도 인기몰이를 하며 월드투어를 계속했고 지금은 뉴질랜드에까지 상영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물론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장금의 치료방법을 보면 다른 의관들과 달리 오랜 수라간 생활을 통해 터득한 지식을 치료에 활용한다. 평소 병자의 식습관과 생활습관 등에서 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여러 약재들을 직접 먹어보고 그 효능을 알아낸 다음 그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여 다른 사람을 치유한다는 것이다. 이 간단한 치료법이 의학에 문외한인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질병이 식습관과 생활습관의 산물이라면 범죄 또한 범죄인의 생활환경, 불우한 성장과정, 삶의 어려움과 좌절,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분노 등 개인의 경험의 산물이다. 따라서 범죄인의 올바른 교화·개선을 위해서는 그들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단순히 표면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며 다큐멘터리적으로 접근하여 그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이미 보호관찰등에관한법률 제19조에 법원이 필요한 경우 피고인의 범행동기, 직업, 생활환경, 교우관계, 가족상황, 피해회복 여부 등 피고인에 관한 사항을 보호관찰관으로 하여금 조사를 요구할 수 있는 판결전조사라는 제도를 두고 있어 피고인에게 다큐멘터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전국의 보호관찰소는 심리학 석사학위 이상의 정신보건 임상심리사 1급 자격증을 가진 조사전문가가 배치되어 있다.

판결전조사란 법관이 보호관찰관으로 하여금 유죄가 인정된 범죄인에 대한 다양한 배경정보 즉 경력, 성장과정, 혼인관계, 심리검사 등 제반 정상자료에 대한 조사를 하도록 하여 재판에 참고가 될 뿐 아니라 범죄인의 개선과 사회복귀를 위한 치유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이다.

정의에 따른 처벌만 존재하는 사회는 율법의 사회이고, 교화·개선만 강조하는 사회는 정의가 없는 혼동의 사회라고 한다면, 성숙한 사회는 정의에 의한 처벌과 함께 우리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사회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법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판결전조사를 활용하여 피고인에게 양형의 합리화를, 교정기관에는 처우의 기초자료로 활용함으로써 처벌과 교화가 공존하는 형사정책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