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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문화 그 주변
하길남 문학평론가
[2009-09-15 오전 10:21:00]
 
 

하길남 문학평론가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를 보고 있다. 사회자가 이야기 도중에 타향에서 ‘객고(客苦)를 풀거나’ 하는 소리가 흡사, ‘객(客)코를 풀거나...’ 하는 우스갯소리로 들리는 것이 아닌가. 요즘은 ‘女봐라’느니, ‘悲내리는’ 등과 같이 한자에 우리말을 갖다 붙여서 합성어를 만들어 쓰는 경우가 없잖아 내 귀에 그렇게 들렸는지 모른다. 이와 같이 말을 잘못 듣는 경우도 적잖은 사회적 병리현상 탓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외국인 달레는 ‘한국 사람들은 이웃이나 과객 또는 외국인에게 환대하고 친절하며 이를 신성한 의무로 생각한다’고 했으며, 사실상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한국은 동양에서 예의 바른 백성이라고 일컬어 오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천박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그 이유는 어디 있을까.


포항공대 김모 교수는 필리핀에 가서 큰 봉변을 당했다. 어떤 청년이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기 앞에다가 와서 ‘씨팔놈’하고 욕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는 <한국인 개새끼>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어 있더라고 했다. 우리가 이들에게 얼마나 모질게 굴었으면 이런 지경에까지 몰렸을까?.


미국 대학 교수 오마이 겐이치는 ‘한국의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경계하라’고 했는가 하면 서울대 권모 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빨리 빨리 병 등으로 아드랄린이 많이 분비되어 공격적이 되고, 이와 더불어 평등 강박증으로 남의 뒷다리를 잡아야 성이 풀린다.’고 하면서 ‘이와 같은 사정 밑에서는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들의 입에서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딱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억울하다는 생각보다 스스로 측은하다는 생각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네 업보가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사정을 두고 어떤 이들은 교육 탓이라고 했다. 중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란서 같은 곳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을 철학학년이라고 할 만큼 철학에 심취하도록 한다. 인간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인지 스스로 철학적 사색을 통해 자기 진단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인격체를 형성해 나가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자기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고 살다보니 그들 최선의 가치는, 다만 돈을 많이 벌어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된다. 말하자면 이러한 인생 최고의 가치를 위해 매진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자연히 정직이나 행위규범, 윤리적 덕목 같은 것이 맥을 못 추게 된다.


우리는 누구 학설이다, 무슨 주의다 하고 유식한 체라도 하려면, 언어철학이니, 데리다니, 푸코니 하고 무슨 외국 이즘이나 석학들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의 주장이나 그들 인물들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사람행세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시대를 제단할 만한 주의를 창안해 내기는 커녕 한물간 세상이치도 모르고 산다. 무식하다 못해 숫제 천박하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아니 자연히 그렇듯 행동이 천박해질 수밖에 없다 하겠다. 배운 것이 없으니까 인간적 천박성을 불식할 수가 없게 된다. 생각의 틀이 고정돼 있어 그것밖에 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깜냥밖에 안 되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세상이 늘 어수선한 것도 일부 그런 군상들로 뒤범벅이 되어 흐르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문지상에 나타난 단어들만 훑어보면 잘 알 수 있다. 부정이다, 부패다, 의혹이다, 게이트다, 병풍이다, 탈류다, 유용이다, 도용이다, 사기다, 투쟁이다, 극한 대립이다, 보복이다, 허위다, 위증이다, 맞고소다, 헐뜯다, 간계다, 계략이다, 험담이다, 모략이다 등등 부정적 언표들로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몇 해 전 일본에 들렀을 때, 택시를 타고 동경에 가는 도중 기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그만 놀라고 말았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라는 책에 대해 소상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실존철학을 말할 때 흔히 인용되는 ‘대자적(對自的 즉자(卽自) 존재’니, 결무(缺無)니 하는 개념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기사양반이 어떻게 이런 것까지 잘 알고 있느냐고 하니, 그는 웃으면서,‘운전기사는 농민이나 상인이나 학자나 그 어느 계층의 사람들을 막론하고 다 태우지요, 그런데 그들과 잠시 대화라도 나누려면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기초지식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오히려 나를 힐책하듯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때 과연 지식의 차이가 바로 국력의 차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모르면 아무 것도 못한다. 우리는 아는 것만큼 산다. 우리는 남을 초대하거나 우연히 여럿이 모이게 되면 으레 술집을 찾거나 한 상 푸짐하게 차려놓고 손님들을 대접하게 마련이다. 만약 적잖은 손님들을 초대해 놓고, 차 한 잔을 대접하거나 쥬스 한 잔으로 떼운다면, 필시 우리는 그 초대한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말 것이다.


외국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왜 그렇게 여길까. 우리는 입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만을 배워왔고 그렇게 길들어 왔기 때문이다. 서구의 여러 외국 사람들의 경우, 베토벤을 좋아하는 음악 동호회,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음악 동호회, 무슨 연극 동호회, 무슨 미술 동호회, 철학 동호회 하는 식으로 각 분야마다 수없이 분화된 모임들이 있어, 각 모임마다 수준 높은 예술을 향유하면서 살게 된다.


말하자면 그들은 입만이 아니라 눈과 귀 등 인간 오관이 전부 즐길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일하게 입만 즐길 수 있는 편협한 사람으로 자라왔을 뿐이다. 그러니 유일하게 입을 즐기기 위해 상다리가 부러져야 하는 것이다. 온갖 말들이 횡행하고 심지어 욕설이 난무하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입이 근질근질하여 참지 못하는 구강형 인간의 본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국에 노래방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입이 성하니 거기에 따라 요리솜씨라도 뒷북을 쳐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역시 손의 항렬이 별 수 없이 하일 없는 화투치기로 소일해야 했는지 모를 일이다.


정신분석학자 한동세는 <민족성-정신의학에서 본 한국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구강적(口腔的) 성격으로 규정, 받아들이기만 하고 줄 줄을 모르고 의리는 수락하고 식용(젖)의 무제한적 공급으로 문화가치의 맹목적 추종과 자아형성이 약해져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좀 알아야 하겠다. 원효 사상이나 화랑정신, 퇴계학, 선비 정신이 말해주듯 우리는 지난 날 위대한 석학들을 배출한 바 있으며, 한 때 우리는 이웃 나라들에게 학문과 문물을 전수해 주는 등 선진국에 대열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세월 따라 우리는 더 발전하기는 커녕 후진국이나 중진국 수준으로 답보하고 말았던가.


우리는 새로 깨어나야 한다. 인도의 시성 타골이 한국은 동방의 등불이 되기 위해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에게는 신바람 정신이 살아 있다. 우리의 널뛰기 문화는 서로 호흡을 맞추는 놀음이요, 높은 이상을 향한 나래 펴기다. 그렇다. 나는 소스라쳐 놀라면서 TV를 끈다. 그리고 쓱 입 언저리를 한 번 훔쳐본다. 

하길남문학평론가(womenis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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