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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하길남 문학평론가
[2009-09-15 오전 9:19:00]
 
 

하길남 문학평론가
손에 든다는 것은 대체적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연상하게 되지만 발로 찬다는 것은 이와 반대로 필요 없는 것, 버려야 할 것을 연상하게  한다. 손에 잡은 것은 품에 안을 수도 있지만, 발로 차는 것은 나로부터 사라지라는 신호가 된다. 그렇다면 결국 손에 잡는 것이 사랑의 상징일 수 있다면, 발로 차는 것은 미움의 상징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동서양 모두 축구의 기원이 적군의 해골을 발로 찬 데서 비롯된 것은 이를 설명해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나는 학교에 다닐 때 운동을 별로 즐긴 기억이 없지만 축구만은 좋아했다. 벗들 사이에서 뒷발질을 잘해서 축구 시합을  할 때는 꼭 나를 끼어 주었으니까. 왜 그랬을까. 발로 차는  것이 증오의 상징이라면 뒷발로 차는 것은 이보다  한 수 더 뜬 꼴이 아닌가. 그 때 나는 세상을 너무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철학자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다.


세상은 살만한 재미가 있는 곳일까 하는 데만 신경을 써서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철학 책만 들고 다니면서 읽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그 당시 우리 바로 옆집에  이사를 온 젊은 분은 철학에 관한 책을 많이 갖고 있었는데, 나에게 아주 헐값에 책을 팔곤 했다. 지금 생가해보면 아마 그 분은 자기가 이미 읽어버린 책이었기 때문에 미련 없이 나에게 처분할 수 있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독서 덕분에 나는 한 동안 콘사이스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으니 그 덕에 머리에 낀 먼지를 씻어내는 데 큰 힘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참으로 나는 늦게나마 다름 아닌 축구가, 사람이 이 세상에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나에게 깨우쳐 주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4강 신화. 그렇다. 그때 우리는 한 민족 모두가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에 젖었다. 그래서 우리는 축구가 위대하다는 것을 알았다. 일 국의 국민 모두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아마 그것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생명의 동력은 기쁨이다. 슬프다고 생각할 때 이미 우리들의 세포는 시들어버린다고 했으니 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죽음은 슬픔이고 기쁨은 삶의 대명사다. 죄는 슬픈 몸체이고 선은 기쁜 뿌리이다. 그 동안 우리는 이 슬픈 유산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한의 민족으로 한 풀이에 지쳐왔다.그래서 어떤 분은 ‘이기는 연습을 못해온 민족’이라는 딱지를 뗀 것이 이번 월드컵 대회의 성과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울분을 폭발한 시합, 한의 갈퀴를 무 뜯어온 싸움터, 서러운 화염을 불사른 전쟁터.


얼마나 짓눌려 왔으면 우리는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를 하라” 하고 외쳐 왔으며 “어두운 눈물이여 멀리 가거라”고 염원해 왔겠는가. “울어라 열풍아 밤이 새도록” 하고 울어 왔겠는가.


이유식 교수는 그의 수필 <’울리다를 통해 본 한국>에서, “요새 그 집안은 울리고 산다”거나 “그 사람은 떵떵 울리고 있다”는 말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는 말이라고 전제하면서” “울다의 피동형이 울리다”에서 보듯 한 집안이 잘 살고 한 사람이 영화를 누리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자아내고 피를 쏟게 했던 기구한 한국적 비극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사연들이란 말인가.


우리는 하나가 되어 동해의 아름다운 무지개로 떠올라 사해(四海)에 다리를 놓았다.

하길남문학평론가(womenis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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