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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로 세우는 시대여야 한다

[2005-04-08]
 
 
 

나를 바로 세우는 시대여야 한다

 

집 한칸 장만할 수 있는

구체적인 희망사항이 보이면 된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우리는 6.25이후의 운동장에서 돌차기와 줄넘기를 하면서 이 노래를 무심히 불렀다. 폭탄이 터지는 그 아슬한 장면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며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지옥과 같은 아수라장의 삭막한 그 때도 군인들은 전우의 시체를 넘어 가면서도 적진을 향한 전의를 불태우며 국권수호에 젊은 피를 바쳤다.

 

때 큰댁의 시숙님은 지리산 산자락 논 위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 이승의 한막을 마감하였고 밤새도록 불빛을 향하여 하산하기 위하여 나무와 풀을 헤친 손톱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고 아이들 아버지는 이야기하곤 하였다. 아들의 비참한 젊은 최후가 믿기지 않았던 시어머님도 얼마후 상심의 끝에 돌아가신 후 고등학교 때 어머님을 잃은 아이들의 아버지는 외롭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었을 것은 명확한 일이었다.

 

시대마다 시대의 아픔이 있고 시대마다 그 시대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늘상 개혁을 외치고 또 개혁에 착수하기도 하였다. 내가 철나고 나서 우리나라의 모든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개혁의 기치를 들고 입성하였고 김영삼 대통령은 아예 역사바로세우기를 높이 들고 전임 대통령을 두사람이나 감옥에 가두기도 하였다.

 

 분명 역사보다도 국민들은 예수님의 말씀, ‘ 저 여자보다 죄 없는 자들만이 그를 돌로 쳐라’고 한 분명한 말씀을 기억했으리라. 그렇다면 대통령이 대통령에게 보낸 그 역사바로세우기는 새로운 역사에 길이길이 푸르고 떳떳해야 하리라.

 

데이빗 로찌는 ‘20세기는, 현대는, 특수한 운명을 짐지고 있다. 그것은 역사를 아예 폐기 처분해서, 쓰레기통에 넣어버리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역사는 늘상 이기는 자의 기록이며 그 승리자의 학자들이 연구한 성과물에 다름 아니다. 한국은 그 나름의 신성한 것을 찾아내야 한다. 모든 문화는 그 문화를 지탱해 주는 성스러운 것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를 지탱시키고 있는 것은 속죄양 의식, 일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천황의식, 한국은 삼국시대의 불교적 애국주의, 이조시대의 유교적 교양주의 등이 있다.

 

그러나 지금 당대의 한국에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신성한 것은 무엇일까?

 

20세기의 벽두에서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드등 사상의 거장들은 그 동안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던 신을 청산하였다. 그리고 1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역사 그 자체를 청산하려고 한다.

 

헤겔이 주장한 목적으로서의 ‘거대 역사’는 이데올로기로, 다시 허구와 기만으로 인식된다. 이와 함께 진화론적 역사의식과 혁명으로서의 역사도 동시에 청산되고 있다. 역사는 ‘소설적 서사’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허구적 서사’로 판명나기도 한다.

 

우리가 가장 객관적이라고 믿는 사진도 그 자신이 재현한 현실과 완전하게 일치할 수는 없다. 그 카메라 렌즈를 잡는 사람의 위치, 그 날의 빛의 조건, 필터의 성질 등은 같은 대상이라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현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재현한 대상은 허구가 아니라 실재하고 있는 대상이다.

 

또한 그 대상의 재현을 상대화하는 조건들(렌즈의 위치, 빛의 밝기, 필터의 종류 등)을 고려함으로서 우리는 그 대상의 객관적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사도 자신의 재현 조건을 고려함으로서 재현될 대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현상시킬 수 있게 된다.

 

역사의 서술도 이와 마찬가지다. 자신의 재료가 될 역사적 사실들이 가진 조건과 그것이 기록물이라면 그 기록자의 사회적 신분과 역할과 위치를 고려한 해석, 그리고 역사가 자신이 위치한 시대적 환경과 객관적 인식의 한계를 맥락화 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인 역사의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는 역사의 객관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임을 함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과거는 그것이 만들어진 자리에서 누구의 접근도 거부한 채 신성한 사물로서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도 완전히 개화되지 않은 하나의 씨앗이다. 역사는 언제나 ‘완전’이란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이 지상에서 계속될 때까지는 그렇다. ‘완전’이란 단어는 신학의 용어이지 이론과 학문의 용어는 아니다.

 

‘나를 바로 세우는 길’이 역사 바로 세우기의 시작이다.

 

오만과 편견을 넘어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냥 밥 세끼 먹고 자식들 공부시키며 7~8년 봉급 모으고 대출받아 집한칸 장만할 수 있는 구체적인 희망사항이 보이면 된다.캄캄 절벽이어서 제대로 된 젊은이가 보따리를 싸서 기회의 나라로 무작정 나가는 저 쓸쓸함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이미 국민은 정치인에게 바라는 수준을 접은지 오래다.

 

정부나 정신 차리고 잘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정영자 신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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