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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바꿔 생각해 봅시다.(6.25 세대 - 신세대)

[2002-09-03]
 
 
 
■ 6·25 세대가 요즘 신세대들에게 똘똘 뭉쳤던 가족애... ''가족해체’ 상상도 못해 6.25가 나기 직전, 중학교 1학년생이던 나는 햐얀 운동화를 깨끗이 빨아놓고 등교할 날을 은근히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 집은 원효로에 있었는데, 유난히 지하실이 넓었다. 전쟁이 터지자 동네 어른들이 아이들부터 살려야 한다며 우리 지하실을 반공호 삼아 아이들을 꾸역꾸역 집어넣었었다. 그러나 내겐 그 일이 즐거운 추억이었다. 지하실에 모인 동네 아이들은 책을 읽기도 하고 연극을 하기도 하면서 도무지 전쟁을 실감하지 못했었는데, 이후 폭격 맞을까봐 아버지 친구네 집이 있는 세검정까지 걸어가면서 군데군데서 폐허가 된 건물들, 다친 사람들이나 죽어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비로소 전쟁을 실감했다. 다시 원효로 집으로 돌아온 우리 가족은 친하게 지내던 집의 딸의 밀고로 아버지가 북한군에게 체포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북한군에게 잡혀있던 이 딸은 우리 아버지가 신문기자란 사실을 알리고 대신 자기는 풀려나왔다. 전쟁이 끝난 후 우연히도 상도동 같은 동네에 살게 돼 이 딸을 자주 마주쳤지만 아버지도 어머니도 별 내색을 하지 않으신 것으로 봐서 당시 어른들은 나름대로 인간을 한없이 비굴하게 만드는 전쟁의 비극성을 잘 이해했던 것 같다. 1·4 후퇴 때 열차 지붕에 올라타고 대구로 피난 가 고모가 계시는 전북 안성까지 내려갔지만, 교육열이 높았던 부모님 덕에 부산으로 다시 옮겨갔다. 이후 9·28 수복 때 서울로 귀환했다. 이런 일련의 전쟁 과정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배움이 있는 곳이면 피난지에서라도 공장 창고까지 몰려가 공부한 절박했던 향학열과 교육열이다. 또 자그마한 방에 일가 친척까지 가세한 15명 남짓한 식구들이 함께 자고 먹고 한 공동체 생활이다. 서로 똘똘 뭉쳐 어떻게든 살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티곤 했다. 어머니는 뜨개질을 해서 시장에 내다 팔고, 요리 솜씨가 있었던 고모들은 떡을 해 식구들에게 분담시켜 팔게 하고, 손재주 있었던 삼촌은 나무 장난감을 만들어 내다 팔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가족공동체는 전쟁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무너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었다... 이렇게 아이들은 어른들의 희생을 무릅쓴 튼튼한 보호벽 덕분에 전쟁을 처절히 실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이들을 키워내면서 전쟁 중의 우리 부모님들처럼 그렇게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 문득 문득 생각하곤 했다. 또 하나, 전쟁으로 인해 생긴 평생 습관은 음식이나 옷을 최대한 보관할 수 있는 대로 보관하는 것이다. 전쟁 중엔 하얀 쌀밥에 간장을 비벼 먹으면 그 이상 가는 음식은 없을 거란 상상을 자주 하곤 했었다. 어쨌든 당시엔 지금처럼 이혼율이 높아져 가족해체 현상이 일어나고, 아이들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며, 또 손쉽게 무엇인가를 버리곤 하는 시대가 오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박형옥(65·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회원) ----------------------------------------------------------------------- ■ 요즘 세대가 6·25 세대에게 우리도 혼란, 빈부 격차 등 또 다른 ‘전쟁’ 치러내고 있어요 오래 전 강의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5월 18일, 광주 민중항쟁의 정신을 이어 받자며 외치던 학우들의 목소리를 어느 정도 자책감을 느끼면서, 강의실에 앉아 듣고 있었다. 나도 나가서 친구들과 함께 시민들을 만나 전직 대통령들의 죄상을 알리고 싶었다. 또 자주적 통일을 막는 외국 세력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외쳐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시간의 교수님은 워낙 나이도 많으셨던 분이었고, 보수적이면서 수업의 융통성이 없던 분이었다. 수업을 과감히 빼먹고, F나 D 학점을 받을 만큼의 용기가 없었던 나는 머리와 육체가 분리되는 듯한 경험을 하면서 그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그 교수님께서 심하게 기침을 하고 나시더니 버럭 화를 내시며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대체 저것들이 뭘 안다고 저렇게 설치는 것이냐? 너희들이 전쟁을 겪어보기라도 했느냐? 전쟁 때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배가 고파 고통을 받았는데, 통일이 어떻다는 둥, 미국이 어떻다는 둥…. 너희들은 그렇게 떠들 자격이 없어!” 이제 그 교수님이 정년 퇴임을 하신 지도 몇 년이 지나 그 분께 배웠던 과목 내용은 어렴풋한 지금까지도 그 때 그 말씀만은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세대는 반공·멸공 교육에 치중한 교육 방식 때문에, 한국전쟁에 대해 올바른 진실을 알지 못한다. 당시 끼니를 채우기 바빴던 민중들이 왜 전쟁이 일어나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 시기를 견뎌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참 아픈 부분이라는 것만큼은 안다. 그 시기를 통해 잃은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옛 기억만 되새기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굶어보지도 않아서’,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아서’ 젊은 세대가 위태로운가? 그렇다면 역으로 우리는 ‘인터넷을 몰라서’, ‘급변하는 시대에 뒤쳐져서’ 우리 윗세대를 부담스러워해야 할까? 시대는 달라져 사회 현상이나 생활 방식은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 당시의 주역 세대가 그 빈곤과 혼란을 겪어내야 했던 것처럼, 지금의 주역 세대인 우리 역시 이 시대 나름의 혼란과 빈부의 격차를 좁혀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윗 세대의 무시와 질책이 아니라, 경험과 연륜에서 나오는 조언과 격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현주(31·대학원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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