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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현장을 찾아서...안성 영평사
신비로운 세계적 미륵과 불석(누워있는 부처님 상)발견
[2005-06-14]
 
 
 

 

교육관 건립을 위한 불사를 하다 신비로운 미륵와불을 발견했다는 입소문에 필자는 바쁘게 카메라를 챙겨들고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 28일 오후 1시 창원역 우등 열차편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열차에 몸을 담은 필자는 긴 여행의 맛을 느끼며 스쳐 지나는 자연의 변화에 경이로움이 일어났다.

 

미륵와불 발견?  절의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 교육관 건립을 위해 나한전을 옮긴 자리에서 와불 발견? 십수년전 일제시대 누가 불교의 융성을 막아보려고 덮어 두었던 것은 아닐까? 온갖 상상을 휘감으며 올라가는 시간은 그리 가깝지는 않았다.

상상의 수수께끼에 빠져들며 창밖에는 가을 준비에 한창인 농부의 바쁜 일손들과 초여름의 풍경이 싱그럽기만 했다.

 

논에는 군데 군데 홀로 백로가 노닐고 있고, 흑두루미도 논두렁에서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었다. 무려 5시간을 넘긴 후 경기도 평택역에서 또다시 4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이 바로 안성시 보개면 신장리 산 44번지 전국최고 대웅전 교육관 건립불사의 현장, 해수관음보살이 미소로 맞이해 주고 대형 포크레인이 일과를 마치고 막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과 자비의 등불을.... 영평사 주지 석정림 합장" '대한불교수미산문조동정종 총무원' 플랜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불사는 1만여평이 넘어 보이는 곳에 수령이 좋은 나무들이 주위를 감사고 아늑하면서 엄숙한 분위기가 번뇌를 가둔 자리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수관음보살 우측에 미륵와불(누워있는 부처님상)이 신비로운 자태로 투영돼 들어왔다.  "아...! 월력의 결실이" 그동안 수차례 주지가 바뀌었지만, 스님에 의해 땅속에서 "2천년 동안 있었던 미륵와불이 세상 밖으로 나오셨구나" 하는 직감이 스쳤다.

 

우선 법당을 찾아 3배를 올린 뒤 스님을 친견 미륵와불 출현의 과정을 듣기로 했다.

정림스님은 경기도 부천시에서 영평사를 건립 오랜 포교와 2000년 창원영평사 포교당을 오가던 중 2002년도 우연히 이곳(용천사) 절을 인수하게 되었다.

 

최초의 절은 언제였는지 몰라도 작은 암자였으나 당시 이절에서 기도로 태어난 사람이 현재 52세 아랫마을에 살고 있다며 이번 불사에 일을 맡아 하고 있었다. 스님은 수미산중 조동정종의 법맥을 갖고 있었다.  이 법맥은 중국의 소림사 문중이다

 

스님은 해월스님을 은사로 득도수계를 받았고, 그래서 스님은 외국에서 더욱 알려진 스님이다.

특히 16세기 말 일본 전국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대륙 진출의 야심을 품고 일으킨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히데요시 휘하의 무장들이 전공의 표식으로 적군의 목 대신에 조선 군민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돌아갔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귀 무덤(코 무덤)'의 유래이다.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에 패퇴함으로서 막을 내렸으나 전란이 남긴 이 '귀무덤(코무덤)'은 전란하에 입은 조선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교훈으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역사의 한을 삼중스님과 정림스님이 주관이 되어 영가천도를 하셨고, 또 하얼빈 역에서 이토히르부미에게 권총 3발을 쏘고 '대한만세'를 외친 뒤 순순히 체포되어 열사한 안중근의사의 영가천도를 하신분으로도 유명했다. 

스님은 그때 "눈물이 어찌나 많이 나던지..." 회상한 얘기에 필자도 콧등이 시큰해졌다.

 

스님은 나한전을 우측으로 옮기고 설법전(교육관) 신축을 위해 정리하다 미륵 와불을 발견하게 됐다.  너무도 뜻하지 않은 일에 스님은 그동안 꿈의 현몽이 심상치 않았음을 이렇게 얘기했다.

 

"나한전을 우측으로 옮기 뒤 위의 미륵불을 옮기려고 했지요" "여러 가지가 여의치 않아 다시 해수관음보살을 옮기려 했고" 그 또한 옮겨지지 않는 여러 가지 난제가 겹쳤다. 그래서 대웅전을 그곳에 앉히기로 결심 불사에 들어갔다. 난제는 계속 겹쳐왔다.

 

최종적으로 종각을 그곳으로 옮기려고 결심하였으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런 과정으로 인해 3년이란 세월이 흘러 불사는 더욱 힘들어 졌는데 우연히 올 3월 흙을 파내면서 처음에는 큰 바위로 오인 대형포크레인으로 끌어내던지 굴삭기로 잘라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소나기가 내리고 번개가 치는 등 여의치 않은 현상이 자꾸 일어났다고 했다.  스님은 도리없이 돌을 그대로 두고 불사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 주위를 정리한 결과 '미륵와불'의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 절의 고요는 평온을 찾았다.

 

그때 스님의 눈에 자꾸만 7불의 부처님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곳에 대웅전을 60여평의 규모로 불사를 잡아 두었다.  신장리 중턱 영평사에서 바라보는 비봉산 일출은 대웅전 법당 부처님의 명궁과 마주하게 된다.

 

지형학적으로 묘한 느낌을 받은 필자의 물음에 옆에 있던 처사의 답은 이렇게 돌아왔다. "이곳은 학이 내린 곳입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면 바람이 감아치면서 회오리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는 지형적인 면을 갖고 있지요" " 이럴 때마다 마을에는 사람이 한 두 사람씩 죽어나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요."

 

"스님이 절 복원을 하고 있는 동안 아직은 조용합니다."  처사도 이해할 수 없다며 옆에서 말을 또 거들었다.  "신장리 마을에는 70여가구가 살고 있습니다." "사고가 해마다 다발적으로 나면서 남녀노소 없이 죽어나갔습니다." "이 마을에 스님이 온 이후부터는 마을이 평화로워졌다" 며 그래서 요즈음도 마을사람들의 입소문에 토, 일요일은 200여명이 몰려와 친견을 하고 간단다. 주말에는 너무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 국수를 삶아 내는데 마치 국수먹기 경진대회를 방불케 한다고 했다.

 

스님은 3번의 죽음을 넘겼다.  이유없는 병으로 몸이 쇠약해져 혼자서는 서지도 못했다. 성년의 나이인데도 10세정도 아이들의 몸무게에 지탱해야하는 스님은 쇠약해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항상 이유없는 병으로 목숨이 지천하에 달려있어 부모님의 걱정을 끼고 살았다.

 

정림스님은 토굴생활을 많이 하신분이다. 10∼20대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으로 실려다니면서 사생의 길을 넘긴 스님은 그때 의사는 이미 숨이 끊겼다면서 영안실로 안내하면 자연적으로 근육의 반응으로 다시 뒤돌아 나오기를 수차례, 그때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인데도 정신적으로 모두 들렸다고 한다. 

의사가 자신을 "영안실”로 하면"나는 이제 죽는 구나”하고 있으면 몸이 꿈틀 주위를 놀라게 하곤했다.

 

그 뒤로 어느날 혼자서 곰곰히 생각하다 못해 스님은 해인사 산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렇게 죽는 것 보다야 혼자서 토굴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 낮다고 생각 풀뿌리 나무뿌리를 뽑아 먹고 살면서 항상 그 나무나 풀을 사진을 찍어두었다고 한다.  만약 토굴에서 죽으면 증명을 남기기 위해서... 스님은 해인사를 시작 오대산, 지리산, 백두산, 히말리야산, 마지막으로 함양 서상에 있는 마천(86년)에서 산을 내려왔다.  건강을 되찾은 스님은 제2의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모든 중생을 위해 살다가 가야겠다."  토굴에서 혼자 참선으로 시작한 스님은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하고 묘한 깨달음은 마음길이 끊어져야 한다"고 생각 중국 소림사로 발길을 옮겼다.

스님의 이러한 모습을 안타까워한 모친(이씨부인)은 아들을 위해 살려만 달라며 통도사의 어느 암자 큰스님의 공양주로 들어가 무릎이 닳도록 법당을 지키며 기도를 했다.  건강을 찾은 스님은 속가를 떠나 중국으로 넘어갔다.  이씨부인은 이제는 큰 스님 되어 돌아오라며 또 다시 기도에 정진한 세월이 이제 50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

 

필자는 정림스님의 속가 어머니, 이씨부인의 얘기를 들으며 '위대한 한국인으로 한국불교사상사에서 원효와 더불어 가장 큰 별로 추앙받는 경허스님' 의 어머니, 박씨부인을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스님은 지금 대한불교 수미산문조동정종 총무원장과 세계종교법황청 한국부법황이며, 성성경찰서 경승실장, 일붕신문사 사장으로서 해외포교를 위해 미국, 일본, 중국, 태국, 네팔 등 각국을 순방하며 한국불교를 포교해온 세계적으로 알려진 큰 스님을 친견하고 있다는 생각에 필자는 또 한번 마음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육신은 십수년전 전생으로 바쳤다"고 말씀하신 스님의 눈빛으로 "법의 유지와 전승은 불교 교단의 존재이유가 되는 것이며 우리자신 삶의 전"”라고 설파하는 듯 했다.

 

스님은 앞으로 중국소림사 무술연수관을 만들어 소림무술 한국본산으로 만들어 사회 봉사도량으로 중생구제에 힘쓸 계획과 내낸에 모든 불사가 완료되면 영평사는 큰 도량사찰로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교육은 물론, 정법수호의 햇불로 잠자고 있는 전국의 불자들을 깨어나게 하는 교육의 가람이 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된다.

 

/김영기자(womenis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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