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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조각보명인 김현희씨

 

 

“60년 만에 처음 보는 솜씨입니다. 이 아이는 내가 끼고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스승은 당신 생애 유일한 제자를 한눈에 알아보셨다. 1964년, 조선 궁중 수방나인에게 자수를 배운 윤정식 선생은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김현희(59세) 씨가 놓은 수를 보고 김 씨 어머니에게 말했다. 당시 윤 선생에게 자수를 배우는 이들은 제법 있었다. 김현희 씨의 어머니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고, 김씨는 어머니가 가져온 수본을 보고 수를 놓았다. 어머니가 딸의 수를 선보이자 선생은 감탄을 금치 못하셨다고 한다.


지난 1992년 윤정식 선생이 백수를 누리고 돌아가셨을 때 윤 선생의 딸은 문상객들에게 김현희 씨를‘우리 어머니의 유일한 제자’라고 소개했다. 김현희 씨는 그 빼어난 솜씨도 솜씨려니와 스승의 마음까지 읽고 뜻을 따른 참된 제자였다.

 

“너는 품을 팔지 말고 작품을 해라”
윤 선생은 자신이 익힌 바느질에 대한 모든 것을 제자에게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김현희 씨는 실을 잣고 염색을 하고 천을 마르고 바느질을 하고 수를 놓는 모든 과정을 익혔다. 그 과정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방대했다. 자수 하나만 보더라도 베갯모, 주머니, 흉배 등 다양했다.


“한번 바느질을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웠어요. 바느질이 그렇게 좋았으니까… 지금도 나는 바느질이 그렇게 좋아요. 좋은 선생님을 만난 건 제게 커다란 행운이었어요. 선생님은 바느질 솜씨도 좋으셨지만 참 단아하시고 정신력이 강하시고, 누구보다 부지런하셨던 분이에요. 바느질할 때는 실의 길이가 50㎝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선생님을 통해 배운 말인데, 실이 그보다 더 길면 바느질의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이죠. 집안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두 손으로 해냈던 옛 여인네들의 부지런한 품성이 담긴 말이죠. 선생님은 매사에 옛 어른들의 말을 실천하는 분이셨죠. 양 어깨에 물동이를 져 나르고 연탄을 져나르고 하시며 집안일을 하시던 양반이 저희 집에 바느질을 가르치러 오실 땐 하얀 모시 치마 저고리에 백옥 같은 버선과 흰 고무신을 신고 오시던 분이셨어요. 선생님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함께 걸으면 휘파람 소리가 났어요. 저는 우리 선생님 못 따라가요.”


제자의 솜씨를 아끼셨던 스승은 제자에게 “너는 품을 팔지 말고 작품을 해라.”하고 말씀하셨다. 삶이 궁핍하던 시절, 여인네들은 바느질 품삯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때였다. 주문한 이의 기호에 맞추다 보면 창의력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없게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김현희 씨는 먹고 살기 위해 꽃꽂이도 하고 리본을 접는 부업을 하면서 자기 작품에 몰두했다.
“욕심보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법이에요. 바느질을 해서 돈을 벌 요량이었다면 돈 욕심만 부리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한번 바늘을 잡으면 꼬박 매달려야 하는 수. 그 많은 수를 놓다보니 엉덩이에 욕창도 생기고 팔이 시근거려서 침을 꽂고 새우잠을 청한 적도 여러번이었다. 일주일 동안 팔에 침을 꽂고 있었지만 바늘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조각보,
세상 어느 명화에도 뒤지지 않아

김현희 씨가 보자기, 특히 조각보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은 마흔 무렵이다. 넓고도 넓은 침선 분야 가운데서 일생에 한 길만파도 다 못할 테니 하나만 하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실을 잣는 일부터 염색을 하고 수를 놓는 일까지 공력을 들여야 하고, 그 아름다움이 그 어떤 명화에도 뒤지지 않지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조각보에 생각이 미쳤다고 한다.


수보와 조각보로 나뉘는 보자기. 김현희 씨는 수보와 조각보를 결합하여 그 아름다움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조각보를 만들었다.
“전통을 배운 뒤에는 전통을 깨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새로운 그 무엇이 나오는 거죠.”


김현희 씨는 작품에 혼을 담으려고 했고, 세상은 그의 작품에 주목했다. 그가 1994년 한국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작품은 바로 이 수보와 조각보를 결합한 <화문수(花紋繡) 조각보>였다. 가로 세로 4.5㎝ 짜리 청백 비단 조각 128장을 이은 뒤 그 위에 화병을 수놓은 작품이다. 크기가 다른 조각을 적게는 수십장, 많게는 수백 장을 연결하는 조각보는 우리 여인네들의 ‘재생’, ‘환원’의 지혜가 담겨 있어 그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인다. 대가족의 옷을 직접 지었던 옛 여인네들은 자투리 조각 천 하나 버리지 않고 모아서 조각보를 만들었던 것이다.


김 씨의 조각보는 탁월한 구성력과 아름다운 수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씨의 작품은 일본 고등학교의 가정 교과서 표지에도 실렸고, 오스트리아 국립민속박물관에도 소장돼 있으며, 하버드대 박물관에도 소장돼 있다. 그의 조각보가 세상의 인정을 받고 있으니, 작품을 하라는 윤정식 선생의 당부를 이룬 것이다.


김현희 씨는 최근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부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조각보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작년 봄 뇌종양 수술로 한쪽 팔과 다리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지만 그는 조각보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사람 만나는 일이 즐거워서 몸이 아주 굳지 않는 한 계속 가르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자유기고가박현숙

2005-10-17, HIT : 3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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