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2.10.7 21:4
전체 | 여성정책 | 정치 | 경제/IT | 사회 | 교육n문화 | 생활n정보 | 종합 | 오피니언 | 시론 | 여성신문e-행사 | 613 지방선거 |
박스기사
 전체
 디딤돌 릴레이 인터뷰
 사람·사람들
 역사의 인물
 사설
 만평
 꿈을 실현하는 사람
 운세
 기자수첩
 Funny와 함께 세상속으로
 5.31지방선거 女性
 포토뉴스
 인터넷방송
 동영상뉴스
 탱탱뉴스
 맛집멋집
 E-Focus / 주역
 E-서평
 경남여성신문
 독자의소리
 사회교육개발원
 Beijing 2008
 고정기사
 2008세계여성인권대회
 창간9주년축하메세지
 에티켓통
 건강&요리
 시민단체행사
 알림마당
 뉴스&이슈
 가장 많이 본 기사
 독자기고
 신의한수
 [기록] 박근혜퇴진반대상황판
 may스토리
  가장많이본뉴스
트럼프를 불에
문재인 대통령을
박 대통령에 직
“북한 도발에는
돌아온 캠핑의
이정현, 당신은
김성일 창원시의
붉은 함양에 다
“이런 교복 처
늙음이 단풍처럼
마당극 ‘효자전
김재하 경상남도
박근혜 대통령님
박근혜 생매장과
“표창원의원 부
[뉴스&이슈]
트럼프 대통령
노회찬의 타살의
신안 여교사 윤
정기준실장의 죽
 
박스기사
업로드 :  426_281891.jpg  (0 Byte), Download : 135 
제 목 :  고철사업에 인생의 승부를 건 사람.. 도전하는 자에게 문은 열린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사업은 굴뚝 사업이며, 손으로 하는 일은 굶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부흥철제 서진교 대표(37세)의 말이다.


그가 고철사업으로 뛰어 들었을 때 주위에서는 과연 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1년여만에 년간 매출 4억을 올리는 쾌거를 잡아가고 있다.  서씨의 이력 때문에 주위의 시선은 더 남다르다. 그는 국립창원대 무역학과를 졸업, 경남은행에 입사 평범한 은행원으로 지내다 명퇴 후 외국계 보험회사에 입사하여 전체 영업사원중 항상 상위 1%랭크되었으며, 다시 동부금융그룹의 Sales Manager(부지점장)로 스카웃되어 조직원을 거느린 간부로 근무하다가 ON-LINE에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고 싶다는 강한 승부욕에 과감하게 사무직을 던져버린 사나이 이기 때문이다.  40대에 자신이 서 있어야 하는 곳이 어디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끓임없이 하다, 고철에 몸을 던지기로 하고  3년의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각오했다. 그래서 그의 꿈은 5년만에 30명의 직원을 두는 중소기업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이 계획을 세우며 과감하게 책상을 차고 일어나 기름때 묻은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팔목에는 토시를 끼고요 2004년 6월 부흥철제 창립(고철)을 시작했지요." 이제 그 1주년이 닦아오는 시점에 꿈은 이루어진다는 신화에 접근해 온 셈이다.

 

그는 시작하기 전 수없이 고뇌를 거듭했다.
"인간이 갈 수있는 한가지 외길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이며, 내가 해야 할 책임은 무엇인가?" 날로 발전되어가는 IT산업을 접하면서 금융계가 넘어야 하는 한계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 3D업종을 찾기 시작한 것이 고철이다. 향후 거의 모든 금융업무가 ON-LINE으로 처리 될 것이다. OFF -LINE의 육체노동은 결단코 기계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부정적 생각을 거두게 했다. 또한 육체적인 힘을 감당해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 되었으나 일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건강이 따라주었다고 했다.


금융계근무 당시는 외소하고  날카롭게 보였으나 고철을 하면서 사업가의 모습으로 변했다고나 할까 그는 상당히 낙천적이며 소탈해보였다.
그에게 최초시작의 변을 들어보면,  "1톤 트럭을 할부로 구매하고 본격적으로 고철시장으로 뛰어 들었지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량을 확보하기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2개월에 한번씩 안전화(작업화)의 밑창이 달아 교체 할 정도로 영업에 도전해나갔습니다." "월 900장의 명함을 제조업주마다 찾아다니며 돌렸지요" "보험도 힘들지만 고철은 더 힘든 직업 이였지만 뒤돌아설 수는 없었습니다."  도전하는 그의 변을 들어보기로 했다.

 

- 고철을 하면서 느낀 점은?
은행에 있을 때 제조업의 어려움을 몰랐으나 실제 하면서 제조업주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것은 제조업주가 모르고 접근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 지금은 제가 갖고 있는 노하우로 은행의 대출연계 역할과 대출 금리감면, 세무상담, 경매인수 등의 서비스도 겸하고 있습니다.

 

- 지금 제조업이 어려워지면서 고철상의 물량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말이 있는데 월 찍어내는 물량은?
1년 조금 넘어가고 있습니다. 약 2백여톤 정도 됩니다. 월 매출 3-4천만원 정도 입니다.


- 이 사업을 하면서 특별하게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최초물량 얻은 곳이 효성산업인데 유성정밀 분철을 처음 얻게 되면서 사업의 물고를 트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고철사업이란 막상 뛰어들고 보니 모든 것이 인맥의 흐름으로 접근하지 못하면 실패하게 되는 요인을 파악하게 됐습니다." "절망의 슬럼프도 수차례 겪었지만 그때마다 재 자신에게 도전장의 승부를 걸기로 하고 명함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갔습니다. 그리고 정직과 신용만이 영원한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 판단했습니다."


- 상당히 주관과 가치관이 뚜렷한 것 같은데?
"3대원칙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인내하라. 두려워 하지마라. 놀라지 마라." "저 자신을 극복하는 힘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3대원칙을 만들어 가슴속에 달고 다닙니다."
"한가지예로서 9개월 만에 거래처를 연결하게 되었는데, 이미 그 회사는 고액의 공탁금에 10년간의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 자본력 있는  고철주는 좋은 차를 타고 다닙니다.  자본금이 많은 사람이 하는 사업이니 만큼 그 당시만 해도 저는 경제력이 부족했었죠." "저는 1톤 트럭을 끌고 겁도없이 접근했습니다.  바로 정문 수위실 밖에서부터 출입을 거절당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끈질기게 매일 출근을 하다시피 이곳의 고철을 수거 하고 싶다는 소망과 의사를 전달해나갔습니다."
"수위실 통과하기까지 3개월, 고철담당 차장을 5개월 만에 만났고, 9개월 만에 사장면담까지 도전되었습니다. 체어맨을 타고 다니던 고철상을 뒤로하고 저와 계약을 하게 되면서 즉 고철과 경영의 접목 상생관계의 전략에 승부를 던졌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결국 이겼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의 고지를 넘어서야 한다는 각오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각오입니다.”


- 동부금융그룹 근무당시 진한 에피소드가 퍼져있던데?
"예, 지금생각해도 제가 참으로 끈질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주로 의사, 약사님들에게 보험영업을 하면서 제가 방문한다고 하면 의사, 약사님들은 다 도망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어느 내과원장을 찾아가 아홉 번째까지 쫓겨났죠. 결국 열 번째 저녁을 초대받았고 열한 번째 본 계약에 성공했습니다. 상당한 고액의 계약 이였습니다.


- 향후계획은?
 "북면이 저의 고향입니다. 3남 1녀의 막내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자라 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집안이 가난해 제가 초등 6학년 때 소풍을 가면서 5십원을 빌려서갔죠.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자취방 월세를 제대로 못냈으며, 친구들 집에서 거의 얻어먹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사업의 꿈을 키워 나왔습니다."  앞으로 저는 "5년안에 월 천톤의 물량을 처리하고 싶습니다." "수익금은 구제사업으로 돌리고 싶고요."


- 혹시 옛날 지인들의 도움은?
"있습니다." "옛날 은행거래처의 제조업 사람들이 많이 협조해주고 있어 지면을 통해 감사드립니다.” “항상 보답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정직과 신용만이 성공의 어머니라는 신념으로 살아가면서 사회의 도움은 결코 무상이 아님을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히는 그는 지금 함안 칠곡에서 고철, 비철, 철거 전문업체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신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기필코 신화를 만든다고나 할까?  인터뷰 내내  자신의 신념과 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세번의 도전에서 좌절하고 포기할 수 있는 여건임에도 아홉 번에서 열 번을 도전하는 사람, 열 번째 되지 않으면 열 한번째 도전하는 사람으로 신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신념의 확신을 심어가고 있었다.
고 정주영회장은 소한마리를 팔아 시작된 시련과의 싸움에서 현대라고 하는신화를 창조해 냈다.  아마 부흥철재 서진교사장의 신화는 2톤짜리 트럭을 월부로 구입 월 4천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쾌거는 결코 머지않아 찾아올 신화를 예감할 수 있었다.   

 

/김영기자(womenisnews@hanmail.net)

2005-06-10, HIT : 3974
메일로보내기 프린트화면보기 
 
   이름 :          비밀번호 :
최근기사
‘강동서’ 출연 변희재 “尹̷
박시후 주무관, 생태관광 활성화 도지
‘온누리에 사랑을 캠페인’ 취약계층
경남도, 하동세계차엑스포 성공개최를
마산문화원, 제2회 향토 음식 복원사
경남지역신문협의회 “건전한 여론 조성
함양서 경남도민예술단 ‘대(竹)광대
함양군, 재담소리극 “팔도보부상” 무
‘우리가 만든 청동기문화놀이터’개최
진주-산청 미혼남녀 인연 만들기 참가
감동뉴스
경남 어촌마을 청년이 직접조성 고유
진주,‘마을수호신’ 노거수 정비
박은정 규방공예연구회장, 작품‘만남’
깜짝뉴스
돌아온 캠핑의 계절 가을, 경남에 캠
김성일 창원시의원 탈당권유키로
박근혜 대통령님 주구난방 정부 이제야
 
전체 :
어제 :
오늘 :
경남창원시 성산구 용지로 133번길1. 4층 | Tel 055-267-1203 | Fax 055-267-1204
Copyright ⓒ 여성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omenis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