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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15]여성의 역사를 남긴 사람들-최승희


해외에서 조선춤 선보인 신무용의 개척자
동서양을 융합한 춤사위 속에 조선의 민족정신 깃들어



최승희(崔承喜)는 한국인으로서는 근대무용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최초의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현대무용의 기법으로 창작된 춤 공연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시작했다. 또 일제 말기에 당시로서는 처음인 혼자만의 독무(獨舞)로 17일간 24회의 장기공연을 한 개척자였다.


최승희가 춤 활동을 하던 시기는 한국의 전통적 춤이 내외적으로 그 기반이 흔들리던 때였다. 이런 때 최승희는 조선인으로서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과 해외에서 명성을 날림으로서 신무용의 선구자가 되었다.


최승희는 양반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숙명여학교를 일찍 입학하고 1925년에 16세의 나이로 먼저 조기 졸업하였다. 재학 시절 음악에 재능을 보여 학교측은 동경의 유수한 예능대학에 진학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어려 더 기다려야 한다는 답을 듣게 되었고 또 사범학교에 진학하려 해도 역시 같은 답을 받았다. 속만 태우고 있던 최승희에게 이시이 바쿠의 무용공연을 소개한 사람은 오빠였다.

 

♠ 근대 무용의 천재성


1926년 3월 일본인 이시이 바쿠(石井漠)는 총독부의 후원으로 경성공회에서 무용시(舞踊詩) 공연을 열었다. 그날 공연장에서 최승희는 이시이 바쿠의 춤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었다.
최승희는 1926년 일본 무대에서 ‘금붕어’라는 독무로 첫 데뷔를 후 16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련된 표현력으로 관객들을 사로 잡았다. 이듬해인 1927년에는 이시이 바쿠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의 일원이 되어 조선 무용계에 선을 보였다.


그러나 최승희는 점차 이시이 바쿠의 예술적 성향이 초창기의 진지함에서 벗어나 대중적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1929년 귀국하여 서울 적선동에 최승희 무용 연구소를 열어 연구생을 모집하였다. 그 다음해 2월에는 ‘괴로운 소녀’ ‘해방을 구하는 사람’등을 레퍼토리로 무용발표회를 열었다. 이 공연은 조선춤의 재창조였다. 최승희는 조선춤을 정리하고 무대화하는데 전념한 한성준을 만나 수련을 받았다. 이것은 그 후 최승희가 조선춤을 정리하는 작업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 결혼 이후 더욱 왕성해진 무용활동


1931년 최승희는 오빠의 권유에 따라 안막(安漠)과 결혼 후 작품 기반이 더욱 단단해져서 3년간 총 7회의 발표회를 열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남편은 카프활동으로 감옥에 갇혔다. 최승희는 남편이 석방될 때까지 몇 달 동안 지방 순회공연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흥행은 실패를 거듭하였다.


그때 마침 이시이 바쿠가 경성에서 공연하고 있었다. 최승희는 다시 그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였고 스승은 아무 조건 없이 맞아 동경으로 데리고 갔다.


1934년 다시 동경에서 제1회 신작 발표회를 가지면서 최승희는 일본 무용계에 신데렐라로 데뷔하였다. 최승희는 “어떻게 춤을 추었는지 몰라요. 이 공연이 나의 일생을 결정지은 것이라 생각하면서 추고 또 추었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칼춤’ ‘에헤야 노아라’ ‘승무’ ‘영산춤’처럼 조선의 정서에 기초한 작품이 큰 호응을 받은 것이다.

 

이 공연을 계기로 최승희는 무서운 신인으로 아낌없는 찬사를 받는 대중적 스타가 되었고 최승희 후원회가 조직되었다. 1936년 그녀를 주연으로 한 춤영화 ‘반도의 무희’가 개봉되어 동경에서만 4년 동안 상영되는 대단한 기록을 남겼다.

 

♠ 미국 유럽 등 세계무대로의 진출


일본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최승희는 빛나는 희망을 안고 해외 무대로 시선을 넓혔다. “나는 세계의 유명한 무용가들의 맨 말석이라도 좋으니 해외에 나가 조선춤을 한 번 추어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녀의 인터뷰가 동아일보에 실리자 마자 미국의 흥행사 퍼킨스와 계약을 맺고 전미 순회공연길에 오른 것이다.


1938년 샌프란시스코 카란극장에서 시작된 그녀의 춤은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한국무용사(韓國舞踊史) 최초의 장기 해외 순회 공연에 올랐고 유럽에서의 공연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유럽의 인기를 독점하였고 그의 공연에 피카소도 참석하였다.


이후 1937년부터 4년 동안 최승희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와 파리, 브뤼쉘, 헤이그와 남미 각지에서 150회의 순회공연을 계속하며 조선무용을 알렸다. 그녀는 공연할 적마다 굳이 ‘코리언 댄서’라 명기함으로써 강한 민족적 자존심을 보였으며, 서울 만주 조선 각지를 순회공연하여 민족적 일체감을 심는데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시체제 속에서 일본 당국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만주 병사 위문공연을 택하였고, 이 시기에 동양미에 새로이 눈을 뜨게 되었다. 중국사(中國史)의 여러 일화(逸話)를 춤으로 옮기고 또 동양적인 몸짓의 선을 춤으로 살려내는 작업도 병행하였다.

 

♠ 해방후 남편과 월북, 무용 활동 계속



최승희는 1945년 해방과 함께 귀국하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친일파라는 냉대만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월북하여 평양에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연 50명씩 학생을 모집하였다. 또한 그녀는 중국에서 체계화하여 중국제자들을 키우고, 조선족 제자들을 키우기도 했다.


1955년에는 최승희 무용 30주년 행사가 성대하게 이루어졌고 남편 안막도 높은 자리에 올랐으며 딸 안성희도 최승희의 춤을 잇는 수제자로 키워져 25살의 나이로 공훈 배우가 되었다.
그러나 1959년 남편이 반김일성파로 몰려 숙청되고 최승희도 투쟁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모든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그후 최승희의 말로에 관해서는 정확히 전해지는 바가 없다. 격리 수용되었다가 간암으로 죽었다고도 하며, 서울로 탈출하려다가 탄로가 나 모두 총살 당했다고도 한다.


분단의 아픔으로 최승희의 최후는 비록 비참하였지만 동서양의 무용을 융합한 그녀의 춤 속에는 조선의 민족정신이 신비하게 깃들어 있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 위문공연 등 친일행위를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녀는 참으로 뛰어난 삶을 산 여성이었다.


한국 무용사에서 신무용가로 분류되는 최승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민족 무용을 체계화하고 발전시킨 사람으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편집부(womenisnews@hanmail.net)

2006-07-31, HIT :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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