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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12]여성의 역사를 남긴 사람들-모윤숙


여성의 한계를 극복 조국 사랑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체험을 통한 끈임없는 애국시 창작



모윤숙(毛允淑)은 1909년 3월 5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아버지 모학수와 어머니 임마태 사이에서 1남4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모학수는 교회 전도사이면서 독립투사였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영향 때문인지, 그는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해 고민하였다. 6세 때부터 상여를 따라 다니는 버릇이 생겨, 부모를 많이 괴롭혔다고 한다. 이러한 체험 덕분에, 원산 진성보통학교 3학년 때에 벌써 ‘죽음’이란 시를 지었다.

 

족두리 쓰고 연지 찍고 나삼 소매에 꽃가마 타고
어제 그제 시집온 색시가
오늘은 꽃가마 타고 울고 가네.
산길도 저문 날에 어디로 가노
억세게 생긴 일꾼들이
고운 눈이랑 입술이랑
네모 관 속에 꼭 몰아 놓고
밧줄로 동여서 땅 속에 넣었네.

 

어린 나이에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정도로 모윤숙은 무척 조숙한 소녀였는데, 아버지의 독립운동 때문에 살림이 어려워져서 함흥 숙부 댁으로 이사갔다가 3ㆍ1독립만세운동을 체험하게 된다. 어머니가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헌병의 말굽에 채여서 피투성이가 된 광경을 보고 ‘태극기’라는 시를 지었다. 그는 이때 11세의 어린 소녀였지만, 독립만세를 부르던 어머니가 일본 헌병의 말발굽에 채여 넘어지면서 피 흘리는 모습을 보고 민족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으며, 애국심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자극은 평생 그의 문학과 생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 독립투사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활동하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 때문에 언제나 집에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모윤숙은 다른 소녀들처럼 가부장적인 가정의 억압 속에서 자라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를 “사내같이 생겨먹은 계집애”라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그를 소녀로만 기르지는 않았다. 나중에도 딸에게 꼭 시집가기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모윤숙은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서 가정의 행복을 포기한 아버지에 대해서, 반항심보다는 존경심을 가지고 자랐다.


아버지는 딸에게 자기 목소리가 있는 글을 쓰라고 권하였다.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솔직한 글이 살아 있는 글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일찍부터 알았던 것이다.


모윤숙이 회고한 것처럼, 아버지의 이러한 가르침은 평생 모윤숙 문학의 방향이 되었다. 그의 대표작은 시인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말하는 것처럼 쓰여진 것이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도 시인 자신이 산기슭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국군 소위의 주검을 보면서, 눈에 보이는대로, 마음에 생각나는대로 말한 것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몇 십년 계속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렌의 애가’도 자기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쓴 장편시인데, 그런 솔직한 목소리가 많은 독자들에게 진실한 호소력을 지니고 다가선 것이다.


모윤숙은 평생 아버지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살았다. 1933년에 지어진 ‘조선의 딸’이라는 시를 보면 시에 나오는 ‘그’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단순한 애인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으며, ‘딸’이라는 말을 통해서 ‘아버지’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타일렀으며, 남자에게 시집가서 살림하는 평범한 여자가 되지 말고 ‘조선의 딸’이 되라고 권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시를 쓰던 1933년에 배화여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하였고, 첫 시집 「빛나는 지역」을 간행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독일유학까지 다녀온 철학박사 안호상과 결혼하였지만, 이미 ‘사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다짐한 그는 평범한 주부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남편과 시댁에서는 모윤숙이 구여성들처럼 집안에 들어앉아 전처의 자식을 키우며 살림이나 해주기를 바랐으므로 늘 마찰이 있었으며, 결국 얼마 안되어 별거생활에 들어갔다.

 

♠ 새 나라 건국과 애국시에도 앞장서


일본제국주의 식민치하에서 춘원 이광수를 비롯한 많은 시인들이 창씨개명(創氏改名)하여 성(姓)을 일본식으로 바꾸고 친일파가 되었다. 모윤숙도 강권에 못이겨 친일적인 시를 짓고 강연에도 나갔지만, 그는 목숨을 걸고 끝까지 창씨개명에 반대하였다. 자기를 조국사랑에 앞장서게 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와의 끈이었던 성(姓)을 바꾸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조선의 딸’이나 ‘이 생명을’ 같은 시를 썼다는 이유 때문에 경기도청 지하실 감옥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조국 광복의 날이 왔다. 그는 조국 광복의 기쁨과 조국 분단의 아픔을 시로 지어, 그 기쁨을 민족과 함께 나누고, 그 슬픔도 민족과 함께 나눴다.


다른 여류시인들과는 달리, 그는 민족과 조국의 혼란스러운 역사를 목격하고 체험하면서 스케일 큰 시들을 계속 지었다. 문학이 조국의 역사를 위해 쓰여진 것이다.


1948년 제3차 유엔총회에 대한민국을 합법적인 국가로 인준하는 문제가 상정되었는데, 그는 이 총회에 대한민국의 대표로 참석하여 유창한 영어솜씨와 남성 못지 않은 사교술을 바탕으로 수많은 국가대표들과 접촉하며 승인을 이끌어냈다.


6.25동란이 일어나던 날, 모윤숙은 방송국의 권유로 애국시를 낭송하다가 피난할 기회를 놓치고, 딸과 헤어져서 경기도 광주 근처를 숨어 다녔다. 유엔 대표로 활약했던 그는 북한군에게 잡힐 바에야 차라리 자살하려고, 수면제까지 먹었다. 그러나 국군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되자, 조국과 국군에 대한 사랑이 더욱 뜨거워졌다. 이러한 사랑 속에서 쓰여진 시가 바로 90행의 장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이다.


그는 부산피난 시절에 이화여대 텐트교실에서 영문과 창작시간을 맡아 가르치다가, 1951년 전쟁 중에 이승만 대통령의 부탁으로 낙랑(樂浪)클럽을 조직해서 민간외교의 한 부분을 담당하였다. 이화여대 총장인 김활란 박사가 고문을 맡고, 모윤숙이 회장을 맡았는데, 50여명의 상류층 부인들이 회원이 되어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모임이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 애국시를 지었다. 임진왜란 중에 왜군 장수를 껴안고 남강 푸른 물에 몸을 던졌던 여성 논개를 주인공으로 서사시 <논개>를 짓기 시작하여, <황룡사 구층탑>, <성삼문> 등의 장편서사시를 계속 지었다. 그는 1970년부터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그의 마지막 업적은 국회의원 활동보다도 애국서사시들을 계속 지었다는 점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서사시 <성삼문>을 쓰다가 뇌일혈로 쓰러져 중단했는데, 성삼문과 신숙주의 아내를 통해서 충성스러운 조선여인의 삶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는 결국 이 시집을 끝내지 못하고 병석에 누워 세상을 마쳤지만, 여성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조국 사랑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그의 업적은 오랫동안 후배들에게 모범이 될 것이다.

최경연기자(womenisnews@hanmail.net)

2006-06-22, HIT :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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