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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10] 여성의 역시를 남긴 사람들-함동정월


신금을 연주한 가야금 명인
요염하고 청순한 자연음의 자태를 빛내는 아름다운 가락 선사해



음악이란 좋은 것이다. 음악의 뗏목을 타면 한가로이 궁궐을 걷는 왕비가 될 수도 있고, 팍팍한 삶을 위안 받을 수도 있고, 감은 눈 속으로 때늦은 내장산 단풍도 달려오니 말이다.
특히 어려운 환경에서는 음악이 사람을 구원할 수가 있는데, 가야금 명인 함동정월(咸洞庭月, 본명 함금덕, 인간문화재 23호 가야금병창 및 산조 보유자)이 그 예다.

 

▶ 깊은 슬픔


함동정월이 태어난 전남 강진군 병영면에는 전남 13군을 통솔하는 병사부가 있어서 벼슬아치들의 출입이 잦았다. 자연 악기를 다루는 악공(樂工)과 드나드는 국창(國唱)도 많아서 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관아에서 피리와 북을 다루던 악공이었고 큰오빠도 젓대와 가야금을 연주했다. 생활고로 아버지와 오빠가 아편 끊듯 애써 끊은 예술이지만 타고난 ‘끼’는 소녀에게 흘러든 모양이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대신 노래를 배워 성공하겠다는 야무진 꿈이 소녀의 가슴에 깃들었다. 소녀는 양녀가 뭔지도 모르면서 김창수의 수양딸이 되어 광주로 갔다. 조선 시대의 유일한 예술 교육기관이었던 권번에서 수업을 받았다. 가야금, 무용, 시조 등 기초과정을 일년 반만에 떼고 소녀는 다시 병영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도 소녀는 김복술에게 가곡을 익히고 오수암과 김군옥에게는 판소리를 배웠다.

 

▶ 귀중한 만남


“선생님 모시고 밤낮 백일 공부를 다녔지. 백일 공부를 안 갈 때는 밤에 마당에다 모깃불 피워 놓고 북채 하나 들고 평상에 올라 목청 높여 소리했어.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다 우리 마당으로 모여들었지.” 어른도 견디기 어려운 그 혹독한 수련과정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소녀 스스로 자청한 것이었다. 예술이면 죽기를 무릅쓰고 덤비는 그 성정(性情)의 바닥에는 노력만 하면 이화중선만큼은 해낼 것 같은 자부심, 고달픈 현실을 탈출하여 희망의 두레박에 올라야 한다는 절박감, 거기에다가 다니고픈 학교를 못 다닌 한도 두텁게 깔려 있었으리라.


그 무렵 귀중한 만남이 있었으니, 가야금 명인 최옥산(崔玉山,1902~1950)이 병영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금도(琴道)를 전수(傳授)할 재목감을 만난 최옥산은 음악성과 감수성이 남 다른 소녀를 자식 이상으로 끔찍이 아꼈다. “내 제자지만 성음(聲音)은 나보다 더 좋구나”감탄, 또 감탄했다. 전통예술은 비의(秘意)로 전달되는 예술이며, 스승으로부터 받은 뒤에도 독공(獨功)으로 자유로운 정신적 힘을 득(得)해야 하는 예술이다. 자기를 알아주는 선생님 밑에서 마음껏 공부했으므로 소녀는 행복했다.


“배울 때 고생 많이 했어. 가야금줄을 세게 매니까 줄을 누르는 팔이 막 붓지. 줄을 튕기면 손가락도 붓고 살갗이 벗겨져. 그러면 버드나무를 꺾어다 화롯불에 꽂아. 김과 거품이 뽀르륵 올라오면 거기다 손가락을 지져. 몇 번씩만 지지면 돌자갈처럼 딴딴해져서 덧이 안 나거든.” 짜임새가 치밀하고 기품있는 산조의 진음(眞音)을 고스란히 물려주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스승. 팔목이 발목처럼 굵어지고 왼팔 또한 종아리보다 굵어지도록 투지를 불태우는 제자. 예인의 피물림 위에 쌓아올린 그 극기의 세월은 소녀를 이 시대의 빛나는 예인으로 우뚝 세워놓았다. 동정월(洞庭月. 중국 동정호에 뜬 달)이라는 예명을 얻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 짧은 행복 긴 시련


공부를 시작한 지 7년 뒤인 19세 때, 광주에서 콩쿨 대회가 열렸다. 일본의 콜롬비아 레코드 회사에서 주최한 그 대회에 나가 그녀는 제일 어린 나이로 1등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 해 가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50여 일간 머무르며 판소리와 가야금 산조, 가야금 병창을 12장의 레코드에 취입했다.


행복은 그러나 너무 짧게 뒷모습을 보였다. 태평양전쟁으로 나라가 시끄러워지자 계룡산 천도설을 믿었던 남편 정씨는 온 가족을 이끌고 계룡산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온양에서 10년 살다가 다시 대전으로 옮겨 그의 명성을 기억하는 이들의 주선으로 국악원을 차렸다. 가야금을 놓은 지 17 년만이었다.


다행히도 잃어버린 줄 알았던 판소리 가락들은 그의 피폐해진 목소리를 비집고 고개를 내밀었다. 쑥대밭인 줄 알았던 가야금 가락들은 소나무 껍질처럼 굳어진 손가락들을 움직여 예전의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함동정월을 가야금 명인으로 거듭 나게 단근질한 사람은 명고수 김명환(1913~1990)이다. ‘북 하나는 하늘이 내린 재주로 알아준 함동정월과 ‘명인을 육십명 넘게 길러냈지만 함 선생만한 예술가는 없다’고 탄복한 김명환. 명창의 소리도 명고를 만나야 살듯 이 사자와 호랑이의 만남은 예술의 활화산이 폭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절묘한 연분이었다.

 

예인의 피물림 위에 쌓아올린
극기의 세월을 거쳐 명인으로 태어나

 


▶ 신금 가락의 오만한 제왕


1980년, 문예진흥원 소강당에서 함동정월의 가야금산조 한바탕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흥이 아직도 선하다. 조율을 마치고 그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늙은 산마루에 앉아 먼 산 위에 둥둣이 떠오르는 보름달을 맞는 듯한 고적함이 감돌았다. 다스름(治音)이 시작되었다. 가락은 느릿느릿 미려한 선을 허공에 그으며 사람들의 가슴으로 날아다녔다. 음이 가슴에 머무는 동안의 그 절대의 침묵은 비상한 긴장과 변화를 유발했다.


흥징~ 지징~ 땅~ 당징~ 손끝을 깔때기 삼아 온 몸의 힘을 응축해서 줄 하나에 붓는 연주법이었다. 줄 하나를 튕기고 나면 음은 오동나무 속을 깊게 돌아 나와 홀연 공중에 떠서 지이잉 울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흠뻑 빠져 있었다. 쏟아지는 땀은 그의 얼굴을 서기(瑞氣)를 머금은 정령(精靈)으로 만들어 갔다. 그리고 그의 가야금소리는 과연 생명처럼 지켜온 음의 오만한 제왕다웠다. 진양조로, 중몰이로, 중중몰이로 요염하고 청순한 자연음의 자태를 빛내면서 더욱 생생한 아름다움을 완성해 가는 가락이었다.


고통이야말로 신에게 이르는 계단이요, 계단이 높을수록 예술은 광채를 발한다던가. 20대의 곱고 아름다웠던 가야금 가락은 30년간의 밑바닥 삶 속에 농익었다. 그러다가 그 가락에 걸맞는 추임새에 기대어 서서히 회생했으며, 드디어는 민족의 심현(心絃)을 탄주할 신금(神琴)가락을 얻은 것이다. 함동정월은 82년에 세종문화회관에 선 이후 건강을 이유로 무대에 서지 않았다. 1988년 6월 ‘뿌리 깊은 나무 산조 전집’에 녹음한 것이 마지막 연주였다. 어느 오디오가 생음악을 당하랴만,CD판으로나마 명인의 한판 생이 응축된 예술세계를 느낄 수 있어 다행이다.

최경연기자(womenisnews@hanmail.net)

2006-05-19, HIT :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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