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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5]여성의 역사를 남긴 사람들 - 허난설헌 1563-1589


관습적 통념을 깨고 자신의 생각을 과감히 표현했던 철의 여인


이 넓은 세상 천지에서 하필이면 왜 좁은 조선에 태어났나?
조선에서도 하필이면 왜 여자로 태어났나?
수많은 남자 가운데 하필이면 왜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나?


조선시대 여성이 자기의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자기만의 삶을 누렸다는 뜻이다. 여성에게 비인간적이었던 조선시대에 자기만의 이름과 자(字), 그리고 호(號)로 문학작품을 창작한 여인이 바로 허초희, 허난설헌이다. 그러나 다른 조선여인 대부분이 가지지 못했던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행복한(?) 불행일 수도 있다.


♠ 문장가 집안에서 태어나


양천 허씨 집안은 고려 때부터 대대로 문장가와 벼슬아치를 길러냈다. 아버지 초당(草堂) 허엽(許曄)도 도가풍(道家風)의 학자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과 퇴계(退溪) 이황(李滉)에게서 글을 배웠다. 난설헌의 시에 도가적(道家的)인 분위기가 풍기는 신선시(神仙時)가 많음도 그 영향이다.


초당은 두 번 장가들었다. 첫째 부인은 한숙창의 딸인데, 큰아들 허성과 두 딸을 낳아 기르다가 먼저 죽었다. 둘째 부인은 호조참판을 지낸 김광철의 딸이다. 허봉과 허균, 그리고 난설헌을 낳았다. 첫 부인의 아들이나 사위들은 학자와 관리로서 평탄하게 지냈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예술가적 기질이 넘쳤던 김씨 부인의 자녀들은 모두 불행하게 살다가 죽었다.


난설헌은 강릉 초당리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서울로 올라왔다. 정승 노수신, 유성룡,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원균 등 유명한 인물들이 이웃에 살았다. 오라버니 허봉은 떠돌이 시인 이달과 절친한 글벗이었다. 최고의 감성파 시인이었던 이달은 난설헌과 허균에게 시를 가르쳤다.


어려서부터 도가 서적을 읽으며 자란 난설헌은 하늘에 신선세계가 있음을 믿었다. 그래서 신선세계의 광한전에다 백옥루(白玉樓)를 짓는다면, 자기가 상량문(上樑文: 상량할 때에 축복하는 글)을 지어야겠다고까지 생각하였다. 그가 8세에 지은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은 그를 일약 신동(神童)으로 이름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여자들에게 한문을 가르치지 않았다. 과거시험을 볼 자격도 없고 살림살이에는 한문이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설헌은 오라버니가 글을 읽을 때에 어깨 너머로 따라서 배웠다. 그러자 그의 천재적인 소질이 드러나서, 결국은 자기를 가르쳤던 오라버니보다도 더 돋보이는 여류시인이 되었다. 특히 당나라의 자유분방한 시는 그의 예민한 감수성을 자극했다. 인간본연(本然)의 성정(性情)을 노래한 송나라의 시보다 감동적이었다. 시를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감성으로 받아들여 자기의 시세계를 재창조한 것이다.


중국에는 예전부터 악부(樂府)라는 민요체 시가 있었다. 중국 장간리라는 마을에 사는 청춘 남녀의 정한을 다룬 ‘장간행(長干行)’ 이라는 시가 있는데, 난설헌은 그 악부의 제목과 소재를 본받아 시를 지었다. 그렇지만 옛시의 답습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이었다.

 

우리 집은 장간리에 오래 살아서
장간리 길을 오가곤 했죠.
내가 더 예쁜가 이 꽃이 더 예쁜가
꽃가지를 꺾어들고 님께 묻기도 했죠.

 

이처럼 낭만적으로 사랑을 꿈꾸던 그도 다른 여자들처럼 결혼하게 되었다. 실제로 사랑해야 할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이다.




♠ 결혼과 좌절


난설헌은 시집가기 전부터 사랑에 대하여 행복스러운 꿈을 지녔다. 여염집 처녀들은 자의 사랑이나 본능적인 감정을 자유롭게 노래하면 안된다고 가정교육을 받았지만, 난설헌은 아직 만나지도 못한 미지의 낭군을 그리며 시를 지었다.

 

해맑은 가을 호수 옥처럼 새파란데
연꽃 우거진 속에다 목란배를 매었네.
물 건너 님을 만나 연꽃 따서 던지고는
행여나 누가 봤을까봐 한나절 부끄러웠네.

 

난설헌은 사랑에도 솔직하고 적극적인 여성이었으며, 남자보다 먼저 사랑을 표시할 줄도 알았다. 이러한 성격은 그의 남매들이 공통적으로 지녔다. 당시에는 부모상을 입는 동안 여자를 멀리해야 했는데, 작은 오라비는 기생과 놀다가 탄핵 당했다. 아우 허균도 같은 이유로 비난을 받자, 비인간적인 당시 봉건사회에 대하여 인간선언을 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 갔던 난설헌의 오라비들은 결국 봉건사회에서 따돌림받았다.


난설헌의 남편감은 그를 가장 사랑하던 오라비 허봉이 직접 골라 주었다. 당시 조선사회에서 가장 훌륭한 집안이라는 안동 김씨 김첨의 아들 김성립(金誠立)에게 누이를 시집보낸 것이다. ‘4대 호당(湖堂)’으로 유명한 집안으로 시집간 난설헌은 그러나 미지의 낭군과 현실의 남편 차이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냥 행복해야 할 시집살이였지만 난설헌은 신혼 초부터 불행하였다. 남편 김성립은 난설헌의 문명(文名)이 부담스러웠는지 열등감에 차서 상대를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과거공부를 한다는 핑게를 대고 밖으로만 돌아다녔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문은 기생방에서 파묻혀 지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설헌은 남편에게 시를 지어 보냈다.

 

제비는 처마 비스듬히 짝 지어 날고
지는 꽃은 어지럽게 비단옷 위를 스치는구나.
규방에서 혼자 기다리는 마음 사뭇 아프기만 한데,
봄풀은 푸르러져도 강남에 가신 님은 여지껏 돌아오시질 않네.

 

신혼살림을 차린 방에서 오지도 않는 님을 기다리며 지은 시이다. 제비가 날아오고 봄풀도 푸르러졌는데, 자기만 홀로 있는 것이다. 허나 이 시가 너무 방탕해서 그의 시집에 실리지 않았다고 「지봉유설(芝峰類說)」은 기록하고 있다.

 

♠ 난설헌의 세 가지 한(恨)과 죽음의 예언


사방을 둘러보아도 누구 하나 난설헌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여도선(女道仙)을 자처하며 많은 시를 읊었지만 형제들 외에는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아들과 딸을 낳았지만 난설헌의 체질이 유약한 탓인지 몇 해를 살다 죽고 세 번째 아이는 배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안팎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면서,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조선이라는 사회에 대하여, 그리고 남편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회의했다.

 

남존여비(男尊女卑), 삼종지도(三從之道), 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 형틀, 모든 것이 남자를 위해서만 만들어진 사회가 그에게는 무덤 속만큼이나 갑갑했으리라.

 

푸른 바닷물이 구슬바다에 스며들고
파란 난새가 채색 난새와 어울렸구나.
연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이 시를 지은 뒤에, 그는 초당에 가득하던 책들 속에서 향불을 피우고 고요하게 죽었다.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몸을 깨끗하게 씻고서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집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올해가 바로 내 나이 3.9의 수(3 x 9=27)에 해당된다. 마침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으니, 내가 죽을 날이다. 내가 지었던 시들은 모두 불태워 없애, 나처럼 시를 짓다가 불행해지는 여인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 하라.


자신이 읽던 책과 손수 지은 시를 불태워 없앴지만 짓궂게도 그의 동생 허균이 타고남은 시를 간직했다. 조선에서 버림받은 시들은 명나라 사신 주지번에 의해 명나라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남편 김성립은 난설헌이 죽은 그 해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리고는 곧 새 장가를 들었다. 그러나 삼년 뒤에 임진왜란을 맞아 싸우다가 죽었다. 그의 무덤은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경수산 안동 김씨 선영에 두 번째 부인 홍씨와 함께 있다. 난설헌은 그 아래 따로 묻혔는데, 어려서 죽은 아들과 딸의 무덤이 그의 발치에 있다. 그러나 중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한많은 무덤들은 모두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시대를 앞서 살면서 지식인으로서 자아분열을 앓았던 허난설헌. 끝내 남존여비의 봉건제도를 뛰어넘지 못하고 말았지만, 제도에 안주하지 않고 갈등하며 살았던 그의 선구자적 의지는 오늘에도 돋보인다.

최경연기자(womenisnews@hanmail.net)

2006-04-10, HIT :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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