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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도전적인 여성, 허황후

 


가야제국의 공동시조 허황후


  2002년 10월, 김수로왕의 부인 허왕후로, 가락허씨의 조상이자 가락 김씨의 할머니로 2000여년 동안 왕릉에만 누워계시던 허왕후가 평등여성 문화여성으로 우뚝 일어나 우리 앞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아들에게는 자신의 성을 물려준 최초의 여성, 그분은 주체성과 독자성은 물론 오늘날의 현대여성보다 훨씬 능력 있고 힘 있는 여성이었다.   /편집자 주


아유타국의 열 여섯 살짜리 공주 허황옥(許黃玉)은 부모님의 꿈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부모님이 동시에 같은 꿈을 꿨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더 놀란 것은 꿈의 내용때문이었다.
“어젯밤 꿈에 상제를 뵈었는데 상제께서 ‘가락국(금관가야)의 수로왕은 하늘이 내려보내서 왕위에 오르게 한 사람인데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그대들이 공주를 보내서 그 배필을 삼게 하라’고 말씀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셨다. 꿈을 깬 뒤에도 상제의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니 거역할 수가 없다.”


그녀에게 이역만리 머나먼 가락국으로 출가하라는 얘기였다. 상제의 명령이라지만 허황옥은 이것이 허황된 꿈 이야기가 아니라 냉혹한 정치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유타국의 국익을 위해서 가야로 시집가야 하는 운명이었다. 당시 가야는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신라의 탈해왕이 수로왕의 자리를 빼앗으려 했던 사실이 기록된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외부의 도전에 직면한 상태였다. 허황옥은 아유타국과 가야 사이 동맹관계의 상징이 될 것이었다.


허황옥은 기왕 가야하는 길이라면 단지 상징적 존재에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다. 수로왕의 부인이 아니라 허황옥 자신의 이름을 가야에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로왕의 부속물이 되어서는 안되었다. 수로왕과 자신은 평등한 부부사이가 되어야 했다.


허황옥은 부왕에게 자신과 가야에서 운명을 함께 할 잉신(▩臣:공주가 시집갈 때 따라가는 시신)들과 시종, 노비들을 떼어달라고 요청했다. 부왕은 신보(申輔)와 조광(趙匡)의 두 잉신과 시종, 노비들을 붙여줬다. 이처럼 집단을 이룬 그녀 일행은 배에 각종 비단과 의복, 피륙과 금·은·주옥(珠玉) 등의 패물을 가득 싣고 가야로 향했다.


허황후 일행을 태운 배는 긴 항해 끝에 목적지인 가야의 도두촌(渡頭村)에 도착했다. 그러자 도두촌이 내려다 보이는 망산도(望山島)에서 봉화가 피어올랐다. 그녀의 배를 보는 가야인들은 탄성을 흘렸다. 붉은 돛대에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신비로운 배였다. 보고를 들은 수로왕은 신하 구간(九干) 등에게 계수나무 노가 달린 배를 저어가서 대궐로 모시고 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허황옥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내가 본래 너희들을 모르는데 어찌 감히 경솔하게 따라갈 수 있느냐?”


허황옥은 가야의 신하들을 따라가서 수로왕을 만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신하가 아니라 수로왕이 직접 나와서 맞이하는 것이 평등 부부의 첫걸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수로왕은 할 수 없이 대궐 아래에서 서남쪽으로 60보쯤 되는 산기슭에 임시로 장막궁전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 그제야 허황옥은 별포(別浦) 나루터에 배를 대고 상륙했다.


수로왕이 임시궁전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수로왕을 만나기 전 치러야 할 자신의 의식이 남아 있었다. 높은 언덕에 오른 그녀는 비단 바지를 벗어 산신령에게 폐백으로 바쳤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을 제의 장소로 삼은 것은 의도적인 행위였다. 이는 자신이 건너온 바다신과 자신이 살아갈 토착신을 연결시키는 제의였는데 중보자는 물론 자신이었다.


제의를 마친 허황후는 비로소 수로왕이 기다리고 있는 장막 궁전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자신이 데려온 신하들을 수로왕에게 소개했는데, 이는 자기 세력과 수로왕 세력 사이의 연합을 제의한 것이었다. 수로왕은 허황후의 이런 의도를 알아차렸다. 수로왕은 “나는 공주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하들이 왕비를 맞으라는 청을 따르지 않았는데, 이제 현숙한 공주가 스스로 오셨으니 이 몸에는 매우 다행한 일이오”라며 환영했다. 이는 수로왕이 허황옥의 연합제안을 수락해 토착세력인 구간 등을 제치고 허황후 집단을 가야의 왕비족으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하늘에서 금줄을 타고 내려온 수로왕과 아유타국에서 붉은 깃발의 배를 타고 온 허황후가 배타적으로 가야 왕실을 구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허황후는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수많은 보물들을 백성들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자기 집단과 토착세력을 화학적으로 융합시켰다. 「가락국기」에 ‘허황후가 가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했다’고 기록된 것은 이런 상황을 전해주는 것이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온 나라 사람들이 땅이 꺼진 듯이 슬퍼했다’는 기록도 그녀가 토착민을 억압한 이주자가 아니라 토착민과 화학적 융합 속에서 금관가야의 공동시조가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백성들은 그녀의 능을 수로왕이 금줄을 타고 내려온 구지봉(龜旨峯) 동쪽 언덕에 조성하고, 그녀의 ‘은혜를 잊지 않으려’ 몇몇 지명을 고쳤다. 그녀가 처음 배에서 내린 도두촌을 주포촌(主浦村)으로, 비단바지를 벗어 제사지낸 높은 언덕을 능현(綾峴·비단고개)으로, 붉은 기를 달고 들어온 바닷가를 기출변(旗出邊·깃발이 나타난 해변)으로 고쳐 허황후를 영원히 기념한 것이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허황후 집단이 왕비를 독점적으로 배출하는 연합전선의 틀은 그대로 유지됐다. 허황후가 곰을 얻는 꿈을 꾸고 낳은 태자 거등(居登)은 2대 왕이 되자 허황후의 잉신 신보의 딸 모정(慕貞)을 왕비로 삼았다. 3대 마품왕의 왕비 역시 허황후의 잉신 조광의 손녀 호구(好仇)였으니 가야의 왕비는 허황후 집단에서 독점하는 것이 왕실의 관례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 신보의 직책은 천부경(泉府卿), 조광의 직책은 종정감(宗正監)이었는데, 이는 허황후 집단이 왕비족뿐만 아니라 가야 조정의 실권까지 장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6대 좌지왕이 관례를 깨고 다른 가문의 여성을 왕비로 삼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407년에 즉위한 좌지왕이 용녀(傭女)를 왕비로 삼고 그녀의 친정 세력을 등용하자 허황후 집단이 이에 강력히 반발했다. 신라가 이 틈을 이용해 침략하려 하는 등 국가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점쟁이는 ‘소인을 없애면 군자가 와서 도울 것’이라는 해괘(解卦)를 내놓았는데 ‘소인’은 물론 용녀였다. 결국 좌지왕은 용녀를 하산도(荷山島)로 귀양보내고 허황후 집단에게 사과해 연합전선을 복원함으로써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허황후 집단은 용녀 집단의 도전을 물리치고 다시 가야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조선시대 문적인 ‘금관고사급허성제문집’(金官古事及許性齊文集)은 허황후가 일곱 아들을 낳았는데 ‘장자 거등은 태자에 봉해졌고, 차자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허씨가 됐다’고 전한다. 어머니의 성을 따른 성씨는 김해 허씨와 여기서 갈라진 양천 허씨, 태인 허씨, 인천 이씨 등이다. 이들은 아직도 수로왕이 시조인 김해 김씨와 통혼하지 않는다. 장남은 수로왕을 따라 김해 김씨가 되고, 차남은 자신을 따라 김해 허씨가 되게 했던 것이니, 이들은 현대판 평등부부의 선구자인 셈이다.

 

● 아유타國
아유타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많은 논란이 있다. 인도 갠지즈 강 중류의 아요디아국이라는 설과 태국 메남 강가의 고도(古都) 아유티아라는 설이 있었다. 이는 허황후가 왔다는 아유타국과 발음이 비슷한데서 착안한 것인데, 김수로왕릉 정문 현판의 쌍어문(雙魚文)이 아요디아 왕국의 문장이라는 점도 주요한 증거로 인용되었다.
허황후의 시호가 보주태후(普州太后)라는 점에 착안해 중국 사천성(四川省) 가릉강(嘉陵江) 유역의 보주라는 설도 있다. 한국전통문화학교의 김병모 총장은 허황후 일행이 인도의 아요디아 국에서 난을 피해 중국 사천성의 보주 일대에 머무르다가 가락국으로 이주했다고 주장했고, 최근에 이희근 박사는 왜(倭)가 한반도 서남부에 있었다는 전제 아래 허황옥이 외국 출신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료정리/화지현리포터(womenisnews@hanmail.net)

2005-11-14, HIT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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